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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번째 행인 Mar 05. 2021

콩나물을 키워보자

Day 1~Day 3

며칠 전, 보쌈을 배달 주문해 먹고 난 뒤 남은 플라스틱 용기를 보다가 문득 '콩나물 기르는 데 쓰면 딱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콩나물이었을까.


어릴 때, 엄마가 집에서 콩나물을 종종 기르곤 했다. 바닥에 구멍 뚫린 시루에 콩을 넣고 검은 천을 덮어뒀는데, 자고 일어나면 쑥쑥 자라 있는 녀석들(?)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어떤 날에 앞집 할머니께서 "콩나물 좀 줘"하고 오셔서는 저녁 요리에 쓸 콩나물을 소쿠리에 담아 가기도 했다. 그때 할머니가 엄마 몰래 내 손에 쥐어주신 천 원짜리 지폐(어떤 때는 500원 동전)는 정말 달콤했다.


아무튼, 사방이 검은색인 데다 구멍 뚫기도 쉽고 뚜껑까지 달린 이 포장용기를 보며 '그 시절의 콩나물시루'를 떠올렸고, 그래서 '혼자 놀기 프로젝트'의 첫 도전은 콩나물 재배가 됐다. 거창한 농사도 아니고, 하루 서너 번 정도 물 주면서 햇빛만 잘 차단해주면 되니까... 참고로 나는 집안에 모든 식물이 이케아의 가짜 화분일만큼 생명체를 다루는(?) 일에 서툴다. 부지런히 물 주고, 흙도 갈아주고, 꾸준히 애정을 줄 자신이 없어서다.


이런 내 손에서 자라날 콩나물들이 걱정은 됐지만, 재배 3일째인 오늘까진 아주아주 괜찮다. 내 관심도와 애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벌써부터 '다 자라면 무슨 음식을 해 먹을까' 하고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재활용 쓰레기였던 플라스틱 용기에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새 생명을 바라보며, 그게 뭐라고 감동을 받는다. 아무튼, 혼자서도 잘 노는 나의 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1~3일 차] 재배기를 만들고 콩을 불리자. 그다음엔 물만 주면 된다.


콩나물이 자랄 공간의 여유가 있는 '검은색 포장용기'(왼쪽부터)와 이 용기 바닥을 뚫을 때 쓸 나사 조임용 연장(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연장을 이용해 완성한 물구멍


재배기 만드는 건 진짜 진짜 진짜 쉽다. 준비물은 깨끗하게 씻은 포장용기, 이케아 가구 조립에 딸려왔던 금속 나사 조임(송곳이어도 됨), 얇은 천(물 통과 가능해야 함), 물받이 받침, 그리고 콩나물 콩(쿠팡에서 주문함)이다.


용기 바닥에 불로 달군 나사 조임(맨손으로 잡았다간 콩나물을 얻고 손가락을 잃게 될 것이야)으로 원하는 위치에 구멍을 뚫어준다. 인두의 원리라고 생각하시라.


콩 불리기 전후 모습. 자기 전에 물에 그릇에 담아 놓으면 다음날 아침에 통통하게 살 오른 콩들을 만날 수 있다. 코로나 전후 나의 모습 같은 이 변화여...


자, 주인공 등판. 이제 콩을 불려줘야 한다. 나는 쿠팡에서 콩나물 콩을 주문해서 받았고, 한번 세척한 뒤 5시간 정도 물에 불렸다. 불어나는 것을 감안해서 양을 조절해야 한다. 콩까지 불렸다면 이제 다 끝났다. 정말이다.


용기 바닥에 얇은 천을 깔아준다. 물이 통과할 수 있는 천이어야 한다. 나는 물에 풀어지지 않는 키친타월을 깔았다. 원래 구멍으로 콩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내 재배기의 구멍은 그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근데 왜 깔았느냐... 콩이 적당히 수분을 머금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천까지 깔았다면 그 위로 콩들을 넓게 올려준다. 물 한번 샤샤샥 뿌려준 뒤 뚜껑을 덮고, 내일의 만남을 기다리면 된다. 이때 재배기 아래에는 물받이 용기가 꼭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청소하거나, 엄마한테 혼나기 싫으면^^


검은콩과 노란 콩을 사서 이렇게 분리해뒀지만, 이 색의 대비, 정렬은 오래 못 간다. 처음부터 섞어두시라.


놀라운 성장, 나는 왜 이렇게 못 컸을까


오늘이 재배 3일 차다. 그런데 이 콩들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재배기에 들어온 첫날밤 퇴근 후 10시께 집에 와서 보니 몇몇 콩에 싹이 났다!!! 이 성장 속도 무엇? 위의 사진은 3월 3일 오전 5시 20분께. 이래서 어른들이 애들 자라는 거 보고 '콩나물 크듯 쑥쑥 큰다'(물론 나는 살면서 평생 이런 소리 들어본 적이 없는 초단신이다)고 했구나 싶다.



물은 출근하는 날엔 새벽 5시(나는 좀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다)에 한번, 출근 직전 8시에 한번, 퇴근 후 집에 와서 한번, 자기 전에 한번(총 4회) 준다. 재택근무하는 날엔 새벽 5시에 한번, 12시에 한번, 오후 6시 이후 자기 전까지 두 번(총 4회) 준다. * 외출 후 오래 집을 비운다면 물기를 머금고 있을 천을 꼭 재배기 바닥에 깔아주시길.


콩나물을 위해 집 온도를 바꾸지는 않았다. 참고로 우리 집 춥다. 지인이 놀러 왔다가 '일찍 보내려고 보일러 안 틀었냐'라고 할 정도로. 나는 약간 쌀쌀한 집에서 몸을 바지런히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


별 배려 없는 이 집에서 콩나물은 보란 듯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어서 자라렴. 맛있는 콩나물 요리로 만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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