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set Lounge Dec 31. 2021

오늘도 잘 참았다

매일 하는 기도가 있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겠다고, 선을 베풀어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주며 살겠다고.


오늘도 잘 참았다. 


시내 운전 중 불현듯 뒤차가 내 차 옆에 바짝 따라와 클락션을 신경질적으로 울린다. 창문을 내리고 들어 보니 깜빡이 좀 넣고 들어오란다. 난 차선을 바꾼 적이 없는데, 나는 분명히 내 선을 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둘 중 하나는 착각을 했다는 건데, 내가 설사 깜빡이를 안 넣고 들어왔다 치자. 그것이 상대 차량을 쫓아와 클락션을 그리 오래 누르고 차를 박을 듯 위협하며 창문을 내리고 고성을 시전 할 만큼의 중죄인가. 내가 설사 그랬다면 머리를 조아리고 석고대죄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상대 차량이 깜빡이를 넣지 않고 들어왔다는 허물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는, 상대 차량을 위협하며 난폭한 언행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본인의 행동은 정의롭고 원칙적인가?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대형 마트에 도착. 

직원에게 찾는 물건의 위치를 묻고자 "실례합니다, 혹시.."라고 운을 띄우자 박스를 정리하던 직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데 이건 흡사 영화에서 선량한 주민이었는데 알고 보니 살인자였던 주인공이 정체가 드러난 순간 고개를 싸악 들어 올리며 보여주는 그런 눈빛이다. 눈빛으로 "말 걸지 마"라는 분위기를 강력하게 풍기고 있었지만 "아뇨, 하던 일 하세요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그분의 심기를 더 건드릴 것 같아서 "혹시 XX 브랜드의..."까지 이야기를 했더니 (심지어 무슨 제품인지 말도 안 함) 그가 "없어(요)"라고 답했다. 괄호 속의 (요)를 듣지 못했지만 내 귀가 잘못되어 못 들었으리라 믿어본다. 노려보는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구태여 마음을 쓰지 않으려 신경을 딴 데 돌린다. 내 아버지의 원수도 그렇게까지는 못 노려볼 텐데, 당신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하루를 산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힘들었을 고단한 하루였겠고, 누군가에게는 그럭저럭 살만한 하루였을 것이다. 그나마 조금 더 나은 하루를 보냈을 것이라 추정되는 내가 참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