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 hsollim@hanmail.net
폭설이 도시를 마비시킨 다음날 아침, 눈길 위를 엉금엉금 다니는 차들에 걸음을 맞추어 길을 나섰다. 짧은 길이었지만 아무 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비탈길에서 미끄러지는 차를 지나친 것만 여러 번이었다. 큰길은 비교적 상황이 좋은 편이었으나 빠득빠득 억눌린 눈길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젖은 콘크리트 위를 가볍게 달리는 구간을 만났다. 이 쾌적함이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했다. 시선은 자연스레 옆으로 향했다. 낮은 건물들 위로 온화한 빛깔의 아침 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구간은 눈이 녹아있을 뿐 아니라 유독 밝았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가두어져 있는지를 말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면 느낄 수 있는 그 해방감이 이와 멀지 않으리라.
도시에 살면서, 더군다나 서울처럼 밀도가 높고 복잡한 대도시에 살면서 자연을 갈망하는 것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공원, 가로수, 교통섬의 화단에서 길들여진 자연이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낫다. 그러나 서울에 살면서도 자연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당장 큼지막한 눈송이가 펑펑 내리는 광경이 그랬다. 거대한 강의 표면이 얼어서 움직이지 않는 모습도 자연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표면에 반사된 채 머리 속을 환하게 부시던 그 빛. 한동안은 아른거리며 남아있을 것 같다.
2020. 7. 25. ⓒ임한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