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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LC Press Feb 23. 2021

‘소비되어버리는’ 역사를 위한 변론

전가람 / jkr6208@snu.ac.kr



들어가며 


최근에 SNS에서 어느 아파트를 홍보하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자료 서두에서는 아파트가 입지하는 지역의 이름에 나무(정확히는 유실수의 일종) 이름이 들어가는 곳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대상지의 역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고유어 표현으로 바꾸면 ‘~나무골’ 정도가 되는 그 지역의 이름, 과거의 경관이 아파트에 살게 될 새로운 주민들에게 어떤 관계를 맺게 하는 아파트일까 하는 기대감이 들어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몇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흔히들 말하는 ‘그런 거 없다’로 아주 빨리 귀결되는, 불안한 감정에 대한 강력한 확증을 경험하고 만다.


~나무골이라는 이름을 설계자가 실제 공간으로 오롯이 재현을 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지명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소비자에게 공유된다면, 과거의 장소성 요소의 하나인 ‘나무’가 오늘의 거주자와 감응하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다. 마을에 유실수가 있었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유실수는 마을 공동체의 식문화 일부가 되기도 하며, 먹는 행위를 교집합으로 삼아 사람들이 만나는 거점이 되기도 한다. 마을 숲으로서의 기능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설계에서 그 나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나무는 아파트 부지에 대한 스토리텔링의 일부일 뿐이었다. 잠깐 소비되고, 새로운 장소성에는 큰 연관성을 갖지 않는 요소일 따름이다. 문득 학부나 대학원 스튜디오 수업의 종강 패널 작업에서 흔히 들어가는, 대상지의 역사 검토가 ‘습관적’으로 남아 있는 모습이 현장의 실무자들에게도 관습처럼 남아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그 생각은 조경 설계의 문제에 닿는다.



소비하는 과거와 재현의 문제 


조경 설계에서 ‘과거 지향적’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조경 설계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미래 세대를 위한 행위로 간주된다. 과거를 바라보며 하는 조경 설계는 역사 경관과 관련된 것이거나 해당 공간의 장소성을 재현해내야 하는, 아주 특수한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마저도 궁극적으로는 오늘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역사 경관을 보존하고, 과거의 기억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서, 그것이 아름답거나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 또는 ‘미래’의 희망과 가치를 반영하는 일인 것이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역사는 설계에서 소비되는 존재로서의 필연적 속성을 지닌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비를 구태여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이미 수많은 것들이 소비라는 행위로 연결되고 해석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공간 이용자와 설계자의 행위 역시도 그 구조 내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다만 우려하는 바가 있다면, 설계자도, 공간 이용자도 감응하거나 공감하지 못할, 과거의 장소성을 억지로 불러일으키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이다. 설계의 당위성이나 타당성을 논증하기 위한 하나의 근거로서 장소의 역사를 활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장소의 역사가 정작 설계안이나 그것을 통해 구성될 새로운 공간과 관련하여 일말의 연결고리조차 없다면, 애써 역사를 소환할 필요가 있는가? 이는 역사에 대한 반달리즘이나 무시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의 문제와 연결된다. 도시 공간의 계획과 설계 과정에서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성격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때로는 필연적으로 그와 같은 과정이 요구될 때도 있다. 새롭게 형성될 장소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면, 구태여 역사를 소환해낼 필요가 있을까? 그와 같은 맥락에서 소환해내는 역사는 오히려 내적 타당성이나 당위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역으로 증명하는 요소가 될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장소성을 설계에서 대하는 자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경 설계의 현장에서 반드시 장소의 역사를 소환하고 재현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이 장소가 지니게 될 서사에서 지속적인 모티프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거칠게나마 두 가지의 역량을 제안해본다: ‘장소 위의 생활사(生活史)에 대한 생활자적 상상력’과 ‘과거와 현재 사이의 해석적 중재자로서의 역량’


장소 위의 생활사에 대한 생활자적 상상력

다양한 조경 설계안이나 건축 설계안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 가운데 하나는 장소에 대한 해석을 ‘과거에 이런 것이 있었다’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끝내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것을 단순 재현해내는 것을 실천의 영역으로 이끌어간다는 데에서 안타까움은 증폭된다. 물론 재현은 과거의 경관의 일부나 전체를 그 모습이 단절된 현재의 공간 위에 다시금 존재하도록(representation)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적 해석으로서의 재현이 지녀야 할, 더 타당한 모드는 오히려 과거의 생활사에서 지닌 가치 있는 요소를 발견하고, 그것이 오늘 세대와 미래 세대에 가질 수 있는 긍정적 가치가 설계를 통해, 현대적 방식으로 그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는(re-presentation) 일이 아닐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경 설계에서 과거의 장소성을 분석하는 일은 곧 그 장소에 존재해온 삶의 방식들을 깊이 있고 폭넓게 해석하고, 그 가치를 탐구하는 것에 방점이 놓인다고 하겠다. 그것은 스스로가 과거의 생활자가 되는 상상력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설계자가 아닌, 과거의 장소성 속에서 살아갔던 이들이 그 공간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치는 무엇인지를, 생활자의 입장에서 상상하는 것이다. 조경 설계는 설계자의 단순한 성과물(masterpiece)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용자의 생활 공간(living space)이 된다. 그렇기에 설계 과정에서 설계자가 인용하고자 하는 과거의 장소성에 대한 해석 또한 생활자적 상상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해석적 중재자로서의 설계 역량

장소 위의 생활사에 대한 생활자적 상상력을 실제 설계에 반영하는 과정에서는 그 가치가 오늘 세대와 미래 세대의 이용자들에게도 잘 전달되고, 교호되며, 감응이 이루어지도록 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맥락이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고 장소 위에 현대적으로 서술해내는, 일종의 해석적 중재자(interpretational mediator)로서의 역량을 요구할 것이다. 예컨대 서두에서 언급한 유실수의 경우, 새롭게 만들어질 아파트 공간의 조경에서 과거 지명의 유래이자 경관의 핵심 요소 중 하나였던 나무를 유의미하게 되살린다고 할 때, 그것이 현대의 거주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공간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나무를 커뮤니티의 공동 관심 요소로 부각시켜 나무를 가꾸고, 매년 가을 수확을 나누는 새로운 커뮤니티 액티비티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단지 안의 마을 숲을 부활시켜 다양한 세대의 산책 공간으로 되살릴 수도 있다.


과거의 요소를 설계안 위에 단순히 인용하는 것을 넘어, 새롭게 해석하고, 과거의 장소성의 가치를 오늘 세대와 미래 세대의 공간 이용자도 공감할 수 있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밑바탕을 까는 것이 역사적 해석으로서의 설계의 기능이자 지향점이 아닐까. 그와 같은 면에서 장소의 역사성을 고려하는 설계자의 입장은 과거 세대와 현재 및 미래 세대를 유의미하게 연결하는, 일종의 해석적 중재자로서의 입장을 지니는 것이다.  


가치 있는 의미 소비 행위로서의 인용을 위하여


어떤 의미에서 이번 글은, 다시금 지난 번 글들에 이어 '프로불편러' 이론쟁이가 장소의 성격과 조경 설계의 문제를 엮어서 까다롭게 이야기한 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문제 의식 한 가지는 공유되기를 소망한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모든 장소가 과거의 원형으로 재현될 수도 없고, 그래야만 할 특별한 당위를 찾을 수도 없는 것이라면 굳이 설계자가 과거의 장소성을 인용하는 데 급급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역사가 설계에서 소비될 수밖에 없는 개념이라면, 그 소비의 양태는 조금 더 가치있는 형태여야 마땅하다. 고지도나 지리지를 단순히 복사-붙여넣기 하거나 과거의 지명을 찾아내기에 급급한 시선들은 그와 같은 가치 지향과는 다소 어긋나 있는 느낌이다. 장소의 과거, 그리고 설계와 시공을 통해 새롭게 장소와 마주할 사람들. 이들이 의미 있고 지속 가능하게 교호해갈 수 있도록 하는, 역사성의 선택과 설계적 해석이 필요하다. 




* 후기

이 글의 이야기는 어쩌면 설계 영역을 넘어, 습관적 단순 인용이 익은 모든 손과 시선을 위한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부터가 자신에 대한 경계로 이 글을 삼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 초고에서 나도 모르게 시도한, 옛 글의 인용이 주는 "자기모순"의 위험성과 "실천하는 비판 지성"의 가치를 일깨우쳐주신 익명의 선생님 한 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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