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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Apr 16. 2024

나는 골프 연습장 붙박이 장농

   

 


  오늘도 골프장에서 한 동생이 약간 격양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와 ~~~ 우리 패밀리들이

이렇게 타석에 꽉 찼네! 든든하~~~ 다. 하하하” 하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등장한다.

그녀가 앞줄부터 타석을 쫘악 훑으며 등장하면 골프장은 시끌시끌해진다.

이런 멘트는 골프장 사장님이 해야 할 텐데. 하지만 회원이 자진해서 말하니 고맙기도 할 것이다.




  내가 다니는 실내 골프 연습장에는 시간차별, 무시로 회원들이 드나든다.

그들은 연습 모드에 들어가기 전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족족 자리를 잡고 앉아 차를 마신다.

믹스커피, 재스민 차, 히비스커스 차, 국화차, 보이 차까지 종류도 가지가지다.

그들은 입부터 털어야 골프가 제대로 된다며 수다에 열중이다.

비록 내가 이미 연습 모드에 들어갔어도 영 레이디들이 물밀듯 밀려와 쉴 타임을 강요할 땐

그들의 아름다운 유혹을 거부할 수 없다. 그새 참새방앗간은 그득하게 찬다.

여인들의 때 묻지 않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피곤함에 찌든 내 몸과 마음을 씻겨 내리는 의식을 취하 듯 나를 유혹한다. 그들을 무시하면서까지 연습 모드에 돌입하기는 참 어렵다. 물론 누구도 연습 모드 들어가 있는 나를 방해하진 않는다. 하지만 투명한 분위기, 맛있는 분위기를 모르는 체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아무리 바빠도 골프 운동은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운동하러 골프 학교에 간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골프를 잘하진 못한다. 때론 가기 싫다. 그래도 이 나이에 운동할 수 있다는 여건에 감사한다.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많이 웃을 수 있다며 내 뇌를 속이고 있다.

 학교 다닐 땐 옆 한 번 맘 놓고 쳐다본 적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다녔던 범생이었다. 남편은 땡땡이치려면서 왜 골프 학교에 가냐고 핀잔이다. 그곳에는 이미 커뮤니티가 구성되어 있어서 가족처럼 환대해 주는 친구와 한참 어린 동생들이 있다. 그곳에 출석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몸도 마음도 편하다.




  나한테 딸랑 70분 할당되는 골프 연습 시간 동안 나는 별거 다 한다.

글 쓰면서 엉켰던 글 타래도 풀고 동생들한테 소중한 정보도 듣는다.

그들은 어미가 제비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듯 생생한 정보를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그것들은 단순히 정보가 아니라 그들만의 사랑의 소통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학생 때 공부 안 하고 뒷동산 언덕에서 도시락 까먹고 노는 친구들이 이제야 이해된다.

우습지? 내 돈 내고 운동하면서 땡땡이가 웬 말이냐고? 나는 골프 운동 능력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가난은 관계의 빈곤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낯선 곳 어디에서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속에 있는 말을 화통하게 펼칠 수 있겠나?

목적이 같고 시간과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는 사실 하나로 우리는 가족이 된다.

 우리는 가족처럼 환대를 주고받는다. 골프 운동에서도 기술, 즉 테크닉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크린 골프나 필드로 라운딩 가고 싶을 때 혼자보다는 어울려서 해야 더 재밌다.

 둘보다는 셋이, 셋보다는 넷이 더 좋다. 적은 수가 스크린 게임을 할 때는 내 순번이 너무 바특하게 다가와 숨 고를 시간이 없어 힘들다. 필드로 라운딩을 가려면 적어도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돈, 건강, 친구, 운전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물론 둘셋이 라운딩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넷이 한 팀이 되었을 때 가성비도 좋고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 희열감이 있다. 하루 라운딩을 하려면 적어도 8시간 이상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마음 맞는 사람과 가야 한다. 불편한 관계라면 공도 더 안 맞고, 당연히 기분이 다운되니, 몸과 마음이 지친다. 건강해지려고 운동하는데 독이 될 수가 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엔 확실히 운동하러 연습장에 오는 사람이 적다.

‘몸이 찌뿌둥하니 오늘만 쉬어. 내일 가면 되잖아 허구한 날 연습장 가는데

오늘 하루 빠진다고 실력이 느니, 누가 혼내니?’ 내 귀에 속삭이며 귀를 간질이는 신호를 보낸다.

오늘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상당히 큰 실내 연습장에 어떤 동생하고 나하고 단둘이 연습하고 있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의 여인이 등장한다. 연습 중인 동생은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타박한다. 자기 혼자 치고 있었다고 투덜거린다. 그래서 나는 화들짝 놀라며,

“애? 이 언니는 투명 인간이니?”

“언니는 붙박이야. 언니는 이 골프장에서 장 같은 사람이야. 장롱 같은 사람.

언니 여태껏 그 사실을 몰랐단 말이요. 진정으로.”라며 허리를 제기며 까르르 웃는다.

그녀는 미워할 수도, 타박할 수도 없는 참 신선한 공기 같은 귀한 존재다.

  오늘은 오랜만에 참새방앗간 여인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풀타임으로 연습했다.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데 그 과업을 무사히 끝냈다.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일 것 같지만, 결국 팀으로 하는 운동이다.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에서 연습하고 있는 누군가에 의지하게 된다.

결국 삶은 관계이고 소통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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