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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림이 언니 최윤순 May 06. 2024

귀 고막 근육 문제 & 혀 탄력도 문제

 (사라진 휴가)



  우리 부부는 매일 삼사십 분 걸어서 실내 골프 연습장에 간다. 스케줄이 바쁜 나와는 달리 남편은 하루 만 보 걷기가 필수다. 눈이 와 미끄러운 날, 억수 같은 장맛비 올 때만 빼고 대부분 걷는다. 연습장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데. 

  “9일에 무슨 일 있는가?”

  “아니, 나만 결혼식에 가고 우리 계획은 없어.”

  “그럼, 골프 라운딩 약속 잡아도 되지?”

  “응”

  운동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골프장은 어디로 가고, 티업은 몇 시야?”

  “29일 9시, 00 골프장이야.”

  “안~~돼~~. 3월 9일이 아니고 2월 29일이었던 거야? 빨리 취소해”

  남편은 급하게 잡힌 약속이라 일단 대답했으면 변경하기 어렵단다. 나에겐 9일만 들려서 당연히 3월 9일로 알았다. 2월 29일은 손녀 유치원 방학이어서 우리가 미리 약속을 잡아놓은 날이었다. 아무 말 없이 어색한 분위기로 한참을 걸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내가 꿈꾸었던 4일간의 휴가는 그렇게 물거품이 되었다.



 

 사실 2월 29일은 손녀 유치원 방학이었다. 삼일절, 연이은 주말로 나에게 황금 같은 4일간의 휴가가 생겼다고 얼마나 좋아했던가! 손주 돌보느라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해 아쉬웠고 항상 갈증이 나던 참이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휴가라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뭐를 먹으면 행복할까?’ 생각만으로도 설렜다. 봄의 상큼함을 연상하니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소통의 부재로 꿈같은 휴가가 물 건너가 버리다니! 

가슴에 휑하니 찬 바람이 몰아쳤다. 내가 확인을 정확히 못 한 탓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 억울했다. 


  며칠 전부터 휴가 때 어디 갈 건지 상의했었다. 남편은 

  “강원도나 가서 싱싱한 회나 먹으며 드라이브나 하지 뭐!”

  입안 가득 바다 향 품은 회 한 접시를 간절히 먹고 싶었다. 쫀득쫀득 혀를 말아 감아 오는 회를 상상하며 한동안 설렘이 밀려왔다. 입맛을 다시며 입술을 핥았다. 살랑대는 봄바람, 눈이 시리도록 검푸른 동해바다와 철썩이는 파도 소리도 듣고 싶었다. 살을 엘듯한 칼바람도 대적하고 싶었다. 아직은 차가운 칼바람이 거세게 내 볼을 때려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몰래 한 사랑처럼 내가 계획했던 일들이 상황에 맞게 척척 풀려나갈 때의 희열감! 

  앗! 나의 실수, 그것도 소통의 부재로 꿈꿔왔던 계획들이 와르르 무너졌을 때의 허탈감! 세상 살아가는데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이렇게 황금 같은 연휴가 허무하게 사라질 줄이야. 


  ‘아내와 한 약속이 머릿속에 한 오라기도 남아 있지 않고 깡그리 잊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골프 라운딩 가는 것에 혹해서였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상해 씩씩거렸다. 남편은 미안한 마음에 운동 다음 날 컨디션 좋으면 드라이브나 가잔다. 그다음 날 가면 되지 않나 생각하지만 우선은 체력이 달린다. 연휴 시작 전 평일에 떠나 일찍 돌아올 계획이었다. 황금연휴에 젊은이들 틈에 떠밀리듯 다니는 여행은 부담스럽다. 연휴 시작 전에 떠나면 한가해서 좋다. 



  다음 날 아침 무척 화가 났지만 신나서 운동 떠나는 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래, 나이 들었어도 누군가 불러줘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니 고맙구나!’ 

내 마음을 바꿔 먹기로 했다. 가는 발걸음 무겁지 않게 밝은 표정으로 추위에 다치지 않게 즐겁게 운동하고 오라며 마중했다. 난 추위가 무섭다. 그래서 휴가 때 무엇을 할지 내 계획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무조건 저지르고 확답을 받았어야 했는데. 남편은 원래 계획 없이 자유롭게 발길 닿는 대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다그치지 않았다. 그저 날씨 예보에 촉각을 세우고 날씨만 좋기를 바랐다. 혹여나 봄추위로 고생할까 봐.


  요즘 동작도 느려지고, 인지 능력과 기억력도 점점 떨어진다는 사실에 서로 공감하고 있었다. 어물어물 말하지 않으려면 혀에 힘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혀도 늙는지 어눌하게 말하고 상대방이 잘 듣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울감이 퍼진다. 남편은 원래 똑똑하게 말하지 못하고 오물오물 말하는 습관이 있다. 핸드폰 음성 시스템으로 정보 검색하는데 자꾸만 마이크에 가까이 대지 않았다고 혼나는 남편 모습을 보면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다.


 

  남편은 군대 시절 포병부대에서 근무했던 때부터 청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한다. 나이 드니 고막 근육에 탈이 났는지, 더 잘 듣지 못해 어리둥절할 때는 안쓰럽다. 

고음은 전혀 들리지 않고 중저음만으로 살아간다.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여 측은지심이 생길 때도 있다. 

내 고막 근육도 예전처럼 정상은 아닐 거라는 짐작이다. 

‘나처럼 상대방 혀도 탄력이 떨어진 탓이 아닐까?’ 

이제부터 나는 중요한 사안을 전달할 때, 계획을 세울 때, 무뎌진 고막 근육과 탄력이 떨어진 혀도 생각해야만 한다. 상대방의 입을 보며 정확히 들을 자세와 마음 준비를 가져야 한다. 남편에게 이제부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써서 실수를 줄이자고 말했다.



 

  그동안 듣고 말하는 것의 소중함을 무심하게 잊고 살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은 머리털 한 가닥도 다 소중하구나! 다시 한번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자연에서 나오는 새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 천둥소리, 이런 것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잘 안 들리는 것은 큰문제다. 하지만 크게 들리는 것 또한 큰문제다. 요즘 나는 소리가 증폭되어 너무 크게 들려 괴롭다. 무엇이든 너무 과해도 부족해도 불편하다. 건강도 여유도 물 흐르듯이 적당하게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생각대로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게 인생사다. 노력해서 조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나이 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수긍하고 때로는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억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순리를 따라가야 편하다.


  덜어내며 가볍게 살자고 생각하지만, 점점 신경 쓸 일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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