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이 결혼하기 전에 쓴 글을 읽어봤다. 다시 읽어봐도 재밌다.
특히 딸들과 감정을 주고받고 공감했던 추억을 더듬어 보니 더 진한 감동이 인다.
옆에 있어도 날마다 봐도 자식은 늘 그립다. 이제는 다 커서 손주도 낳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그런 딸들을 생각만 해도 벌써 내 마음은 부자다. 그저 고맙고 뭉클하니 언제 봐도 힘이 솟는다.
언제나 엄마 곁에 있으면서 깔깔거리며 웃어줄 줄 알았는데...
벌써 커서 다섯 손주를 안겨주고 어엿한 가정을 꾸려 잘살고 있는 딸들이 참 대견하다.
지금은 육아로 직장 일로 힘들지만 먼 훗날 엄마와 함께했던 이런 상상 놀이터에서의
시 짓기 놀이도 그리워질 것이다.
명태
정명숙
명태 사 오라는 엄마 심부름
생선가게 가보니 명태도 여러 가지
갓 잡은 건 생태이고 어린것은 노가리
바짝 말린 북어에 반쯤 말린 코다리
얼린 것은 동태인데 녹인 것은 황태
명태를 사 오라는 엄마 심부름
어느 것을 사야 할지 모르겠어요.
요즘 지하철역에는 읽어볼 만한 시들이 많이 붙어있다.
허둥지둥 출•퇴근길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눈 돌릴 기회와 여유를 준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지만 언제나 간신히 달려가서 타는 경우가 많다.
요즘 나는 뛰어가서 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한두 개가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언제부턴가 시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날 몇 대의 차를 무심히 보내고 쫓아가며 시를 읽었다.
그냥 소리 내어 읽을 뿐 감동이 전해오거나 이해가 가거나 하는 시를 찾는 건 어려웠다.
그런데 정명숙 시인의 <명태>라는 시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국어 시간에 시는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배웠었는데...
나에게 시란 어렵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 된다. 참 쉽게 느낌이 다가온 <명태>라는 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자꾸 다른 소재로 대치해서 색다른 경험을 녹여내고 싶었다.
그래, 시는 누구나 경험한 것을 자산으로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평범한 것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지. 조금만 다양하게 생각하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명태>는 감탄과 웃음을 자아내는 편안한 시였다. 그 시를 외워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려 해도 온전하게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며칠 후 딸들과 지하철을 타게 됐다. 나는 차를 타기 전에 그 시를 보여주고 싶었다.
돌아올 땐 역 반대편에 있는 그 시를 사진 찍기로 약속했다. 우리 세 모녀는 시 따라 짓기 놀이에 열중했다.
내가 운을 떼면 딸들이 운을 받고 딸이 운을 떼면 내가 톡 받아넘기니 절로 시가 만들어졌다.
마치 공을 주고받듯이 시도 뚝딱 만들어질 것 같았다. 참 쉬워 보였다.
얼마 만인가 딸들과 이렇게 편안하게 주고받으며 창작이라는 놀이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
공부한다고 학교에 다닌다고 엄마는 일한다고 우리 셋이 모여서 함께해 본 활동이 참 오랜만이다.
이런 색다른 경험이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겠지!
식용유 (지름)
최윤순
엄마가 식용유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시장에 가보니 식용유도 가지가지
시간 세일에 하나 더 끼워 파는 1+1 콩기름
씨눈이 살아있어 눈이 화~악 밝아지는 현미유
맛깔스러운 풍미와 사치스러울 것 같은 올리브유
보라색 물이 들 것 같은 포도씨유
여름 내내 해님 바라기로 축 처져 고개 들기조차 힘들었을 해바라기씨유
당초 고초 맵기만 한 시집살이 매콤한 맛에 눈물 쏘~옥 빠질 것 같은 고추씨유
엄마들 손에 착착 앵겨서 먹을거리를 평정한 들지름(기름)
고소해서 코가 씰룩씰룩 혓바닥 날름거리게 만드는 참지름(기름)
식용유도 가지가지
무얼 사야 할지 몰라 결국 엄마 심부름을 못 했다.
계속해서 우린 무언가 소재를 하나씩 끄집어내며 시 짓기 놀이에 열중했다.
“신발, 신발에 대해서 지어볼까?
바지, 바지는 어때?
냄비는 어때?”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그냥 낱말만 바꾸면 될 것 같았다.
처음엔 모방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렇게 떠드는 우리 세 모녀를 보곤
이상하고 매너 없는 사람들이라고 욕했을지 모른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우리만의 암호와 경험을
녹여내며 지루한지 모른 체 창작 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우르르 뛰어가 역 건너편에 있는 <명태>라는 시를 아니 행복한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창작은 모방으로부터 시작한다. 함께 찾아가며 놀듯이 하는 창작도 의미가 있다.
무엇이든 다른 시선으로 보고 생각하면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진다.
이런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영사기에 필름이 돌아가듯이 그때 행복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딸들의 청량한 웃음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듯하다. 행복했던 추억을 필름에,
마음에 많이 담아뒀어야 하는데...
우린 서로 바빠서 추억이 많지 않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손주들과 사위들이랑 같이 할 수 있어서 선택의 폭이 더 넓을 수도 있다.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앞으로 오롯이 딸들과 시간을 보내며 사치스러운 수다를 떨 여유가 있을까? 또다시 이런 기회가 올까?
엄마는 옛날 추억을 되씹으며 오늘도 행복감에 젖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