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 진짜 생일과 법적 생일은 단 일 퍼센트도 맞지 않는다.
평소 남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속상하고 우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분들한테 불평만 늘어놓으며 살 수는 없었다.
없는 운도 만들어 사는 세상에 주체적으로 나를 챙기면, 내가 타고난 진짜 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가족들에게 이번엔 나만을 위한 이벤트를 하고 싶다는 취지를 전달했다.
모두 네 종류의 선물을 준비했다. 퀴즈를 맞히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나씩 나누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호기심도 많고 도전을 좋아한다. 일단 무엇인가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실천하고 과정을 즐긴다.
계획을 짜는 순간부터 가족들, 친구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길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호기심은 뇌를 늙지 않게 하고 도전은 새로운 길로 이끈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가족 모임을 주저주저했고 조심스러웠다. 이번 내 생일 때 오랜만에
두 딸네와 온 가족이 편하게 모였다. 나는 내가 준비한 나만의 생일 이벤트를 하고 싶었다. 식구들을 위해서 남편 생일, 손주들 돌잔치, 명절 때마다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하곤 했다. 곰곰이 생각한 후에 작년 남편 생일에 했던 돈 총 쏘기를 나한테 해주기로 마음먹고 돈을 찾아왔다. 천 원 권, 오천 원 권, 만 원 권, 오만 원 권, 여러 장을 지폐로 준비했다. 돈 총 맡는 기분을 최대한 느끼고 싶어 장난감 총 속에 은밀하게 넣으니 기분까지 아슬아슬했다.
퀴즈 1 : 나의 진짜 생일과 법적 생일은 언제일까?
다행히 두 딸과 남편은 제대로 알고 있어서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다. 생일 날짜가 보통 사람들에겐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질문 들어갑니다. 모두 내 말에 집중하고 귀를 쫑긋 세우는 손주들 보는 모습 또한 즐거움이었다. “내가 오늘, 지금 내 생일 날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뭘까요?” 딸, 사위, 손주들이 추측 가능한 답을 불꽃 튀게 말했다. “골프? 여행? 명품 백? 비상금?” 큰딸이 근사치로 답했다. 내가 화들짝 놀라며 애석해 하니, 작은딸이 얼른 “돈 총?”하고 맞췄다. 어떻게 맞췄을까? 마음이 통했을까? 정말 궁금했다. 일단 남편한테 내가 준비한 돈 총을 건네며 쏴주기를 부탁했다. 돈 총 발사하는 장면을 찍고 좌중이 떠들썩하니 손주들은 돈 잡느라 난리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지폐를 잡느라 휘젓는 내 손짓에 저절로 호사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퀴즈 1번을 맞춘 작은딸에게 오늘 준비한 선물 중에서 제일 큰 오만 원 권 한 장을 호기롭게 뽑아주었다. 이번에 출마한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선거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당선 되었다. 국가뿐만 아니라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도 공정과 상식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퀴즈2번 : 오늘 내 생일에 고생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각자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나만의 기준으로 그날 본 상황을 떠올렸다. “둘째 사위요.”라고 작은딸이 큰소리로 말했다. 둘째 사위는 처갓집 행사 때 설거지를 자주 한다. 오늘도 열 맞춰 깔끔하게 설거지를 끝내고 아내의 대답에 배시시 웃는다. 힘들지만 소리 없이 딸 대신 실천하는 사위가 예쁘다.
두 번째는 며칠 전 전복 버터구이를 먹고 맛있다며 딸, 사위, 손주들 먹일 욕심으로 수선스럽고 번잡한 일거리가 많은 전복을 푸짐하게 사온 남편.
세 번째는 많은 전복 씻는데 할아버지를 도와준 열 살 큰손자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할머니 생일 파티를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는 모습도 감동이었다.
마지막으로 동생과 제부가 음식 사러 나갔을 때, 낯가림 하는 7개월 조카 업고 달래느라 피아노 열심히 쳐준 큰딸. 모두 내 생일 파티를 준비해주는 모습이 찐하게 다가와 전율이 일었다. 그들에게도 만 원 권 한 장씩 기분 좋게 주었다.
이쯤 돌아가니 손주들도 돈 받고 싶어 안달이다. 오천 원 권, 천 원 권을 주고 싶은데 명분이 있어야 주는 맛이 제대로 날 것 같았다. 손주들은 정말 재미있다며 돈 총 쏘는 손맛을 진정으로 느끼고 싶다고 난리다.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일단 한 번씩 기회를 줬다. 더 하고 싶다고 난리니 이제부터 돈 총 쏘고 싶으면 장기 자랑해야 한다고 큰딸이 선포한다. 손주들은 더 이상 빼지도, 울먹이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장기자랑을 한다.
큰손자는 휘파람으로 <축하합니다!>를 불러주는데 너무 감미로워서 심장이 울렁울렁했다. 둘째 손자는 지난 설날 장풍 태권도 품새를 외치며 너무 부끄러워 큰 눈에 눈물이 댕그랑 매달렸었다. 이젠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는지 큰 소리로 품새를 절도 있게 해냈다. 셋째 손녀는 부끄러움도 타지 않고 머릿속에 상상 음악을 틀고 발레포즈를 취하며 춤추기 시작한다. 넷째 손녀는 찰칵찰칵 사진 찍는 포즈로 좌중을 압도한다.
가족 모두 세계적인 명곡인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나는 아주 여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I say thank you to you.> 답가를 간드러지게 불렀다. 손주들은 호기심이 발동해 그게 무슨 노래냐고 물으며 신나게 따라 부른다. 온가족이 축하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불러주니 목이 멨다.
나이가 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스스로 나의 기운을 북돋우는 이벤트를 열었다.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지 몰라도 손주들과 한바탕 크게 웃으며 신나게 놀았더니 삶에 대한 애정과 힘이 더 크게 다가왔다. 누군가 특히 남편 자식들이 행복을 챙겨주는 것도 즐거움이고 의미가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 하고 싶으면 눈치 보며 속앓이 할 것 없이 내가 주인공이 되어 나를 챙기며 사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어도 주제넘지 않게 나를 챙기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