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타인은 들고 있기도 내려놓기도 쉽지 않은 대상이다. 내가 귀한 마음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나를 귀하게 여긴다. 내가 조금이라도 허툴게 대하면 귀신같이 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는 끊임없는 밀당이 이루어진다. 내가 평온한 마음으로 기쁨을 전하면, 상대방도 자연스럽게 그에 맞는 반응과 감정을 느낀다. 이럴 때 인생사 참 팍팍하다. 솔직히 나도 대접받고 싶고 존중도 받고 싶다.
자신과 주위에 긍정적인 파장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야만 기운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듯이. 중요한 타인에게 관대하려면 나에게 먼저 친절해야 한다. 내가 충만한 마음을 가질 때 타인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한다.
맞선 본 지 4개월 만에 콩알 튀듯 결혼한 40년 전,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과 신부 친구들이 뒤풀이 장에서 만났다. 한참을 어울려 놀고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내 친구들 중 한 명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신랑 000씨, 내 친구 어디가 좋아서 결혼할 결심을 하셨나요?”
“장딴지요.”
“네? 장딴지라고요? 내 친구가 이상형이라서? 얼굴이 예뻐서?
똑똑해 보여서? 착해 보여서가 아니고요?”
“네.”
“그럼 뭐예요? 가슴도 아니고 웬 장딴지일까? 어이없네요? 이유가 뭐예요?”
잔뜩 호기심이 생긴 친구는 신랑의 심경을 알고 싶어 질문을 퍼부었다.
“신부의 튼실한 장딴지가 매력 포인트였다고요.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내가 응급 상황이 생기면 거뜬하게 업고 뛸 정도의 튼실한 장딴지가 나에겐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하하하.”
친구들은 신랑의 폭탄 발언에 뜨악해했다.
‘내 신랑이 이 정도로 이기적이었어. 묵언 수행하는 보살이 되어야 하나?’ 그땐 슬프기보다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말하며 웃어넘기는 저 남자, 배짱 있어 보이기도 했고 저렇게 이기적인 타인이었던 거야? 그렇다면 내 선택은 과연 옳았는가? 항상 의구심을 품고 살았다.
그렇게 이기적이었던 타인이 요즘 나에게 중요한 타인으로 슬슬 노선을 바꾸고 있다. 나는 황혼 육아 6년 차다. 오후에는 손주 돌보러 딸 집에 갔다가 저녁 8시쯤 집에 온다. 남편은 하루 종일 입에서 곰팡이가 날 듯 말할 상대가 그리울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과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를 틈틈이 말해주면 환하게 웃는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은 내 차가 주차장에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외식하자며 전화를 했다. 내가 여기저기에 불려 다니고 손주들도 할머니만 붙잡고 늘어지니, 인기 쟁이라며 은근히 부러워한다. 손주들 사랑은 시간에 비례한다. 시간 보시, 말씀 보시, 거기에 선물 공세까지! 남편도 함께 가자고 하면 양육자가 여럿이면 아이들이 혼란스럽다고 정중히 거절한다. 그러던 남편이 가끔 외식을 할 때 “당신이 얼마나 비싼 사람인데,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 이 정도 식사는 해야지!” 꽤 비싼 음식을 사주며 나를 어르고 달랜다. 이 나이에도 그런 느낌,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이 싫지는 않다. 나이가 들었어도 서로 챙겨주고 돌봐주다가 부부애가 싹튼다고.
술이 몇 잔 들어가니 그동안 말동무가 그리웠는지 술술 풀어낸다.
“자기는 어쩌다 보니 결혼을 했고, 어쩌다 보니 아이를 낳아 아빠가 됐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이 정도면 우리는 성공한 삶 아니냐?”
라고 반박하며 남편한테도 그렇게 말하라고 독려했다. 그렇지만 남편은 앞으로도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어찌 될지 모른다.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며 슬쩍 피한다. 만면의 미소를 띠며 지그시 바라보는 눈길에서 남편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는 것,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갈림길에서 한 가지 길을 선택하고 나면 늘 생각한다. 만약 다른 길을 선택했으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결혼도 다른 누군가와 했거나 하지 않고 솔로였다면, 어떤 선택지가 나에게 펼쳐졌을까?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며 나의 선택지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우리네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남의 연속이며 배우자와의 만남만큼 중요한 사안은 없다. “결혼은 도박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인생의 반려자는 무엇보다 중요하니 신중해야 한다. 그 선택이 어떠냐에 따라서 나머지 인생이 결정되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소개팅도 어른들이 주선해 주면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 때는 어른들이 이리저리 방향을 정해주면 다소곳이 따랐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사는 삶도 있었고, 지금 젊은이들처럼 자기 주도적으로 모든 걸 결정하고 살아가는 삶도 있다. 이런 것들은 자기 성향이나 주변 상황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런 중요한 순간에 나는 미래 삶을 제대로 설계해 보지도 못하고 선뜻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결혼식이라는 것을 올리고 그런 굴레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삶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00 씨 잘 있냐? 네 튼실한 장딴지는 여전하지?”
그때 조금은 걱정스럽던 얄궂은 대답이 오랫동안 친구들 머릿속에 기억되었나 보다. 이제는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한 발자국 씩 물러나며 기다려주고 또 격려하면서 살아가니 좋다. 요즘은 자기가 나를 잡은 게 아니고 잡혔다고 슬슬 꽁무니를 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