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브런치(4)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생일까지 50일 남은 시점, 삶에 변화를 줘야 함을 통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 수 없다. 인생의 고삐를 두 손으로 쥐고 힘차게 달려 나가야 한다.
10월 10일
청명한 가을 하늘을 구경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엄마를 이끌고 책을 두 권 챙겨 집 앞 공원으로 나섰다. 오래 앉아있기엔 조금 쌀쌀한 듯 하지만 감기를 이 날씨를 온전히 즐겼다는 훈장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도 괜찮을 듯싶다. 엄마 몫의 책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엄마가 첫 장을 낭독해 주었다. (사실 내가 읽어달라고 졸랐다.)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고 했다. 가을은 향수의 계절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걸 예감하기에 그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