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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Sep 18. 2021

ㄱ (기역) - 미역국과 기억

안나의 브런치(4)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이른 아침 나는 하얗게 쌓아 올려진 쌀밥을 보며 시를 한 편 짓지는 못했지만 누군가의 시는 읊조려 볼 수 있었다. 미역국과 잡채, 갈비에서 끝나지 않고 굴비에 삼색나물까지 좁지 않은 식탁을 가득 메우며 한 귀퉁이라도 더 차지해보려 아웅다웅 다투고 있는 생일상. 서 있을 때는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지만 앉고 보니 흰밥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여름의 마지막 날. 거기서 이틀을 뺀 날이 나의 생일이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날들로 보내는 게 멋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지만 사실 모두가 나를 위해 소란을 떨어주는 이 날에 어떻게 무덤덤하게 남아있을까. 이번 주의 브런치는 더 특별한 생일상이다.


한 해를 이렇게 또 살았구나.

생일을 핑계 삼아 자기 반영의 시간을 가져본다. 작년 오늘에 비해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나아진 부분도 퇴보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돌고 돌아 다시 생각해보면 작년 오늘의 나와 별반 다른 게 없다고 느껴진다. 어상반하다.


나무가 숲 속에서 쓰러진다. 하지만 아무도 그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무는 소리를 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있다. 심지어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 아무도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밖의 것들은 물론이고, 안의 것들 - 생각, 기분, 느낌 - 중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간이 흘렀다고 볼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뉴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냉정하게 흐른다고 답했다.


세상의 시간은 흘렀다고 동의해본다. 그렇다면 내 시간은 흘렀을까?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걸 볼 수 없듯이 내가 변하는걸 나는 느낄 수 없다.



작년 오늘, 일기를 써뒀을까 해서 수첩을 뒤적여보지만 비어있다.

아, 그러다가 기억이 났다. 지난여름, 미라클 모닝에 도전했었지. 미라클 모닝은 단순히 일찍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하루에 6개의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명상하기, 다짐 되새기기,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형상화하기, 운동하기, 책 읽기, 기록하기. 생일까지 유지하는 걸 목표로 시도해봤던 게 기억이 난다. 책장을 한참 뒤져보니 일지가 나온다. 그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목은 REBIRTH라고 적혀있다.


생일까지 50일 남은 시점, 삶에 변화를 줘야 함을 통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 수 없다. 인생의 고삐를 두 손으로 쥐고 힘차게 달려 나가야 한다.


한 장 한 장씩 읽어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날의 다짐 한 문단, 그날 하고 싶은 일 목록, 자기 전 하루에 대한 성찰, 그리고 영감을 주는 문구들이 적있다. 목표했던 50일 중, 절반을 조금 넘겨서 일지가 멈춰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자랑스럽다. 되돌아보니 작년의 나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고 있었다. 걸 잊었다니. 참 신기하다. 이렇게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것과 절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결국 공평하게 잊힌다. 색이 바래면 그때의 격렬했던 감정도 흐릿한 잔상으로만 남아버린다.


하루에 1440분이나 있다는 것. 이걸 기억하고 싶었다.




내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지언정 시간은 흐르고 있을 테지. 그리고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을 거다. 과잉 선택의 시대에 태어나 자란 세대라 그럴까? 내가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것들이 나를 슬프게, 불안하게, 참을 수 없게 만든다.


작년에 썼던 수첩과 일기장을 계속 뒤져본다. 포스트잇 한 장이 떨어진다. 10월 10일. 날짜도 써두었다.

10월 10일
청명한 가을 하늘을 구경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엄마를 이끌고 책을 두 권 챙겨 집 앞 공원으로 나섰다. 오래 앉아있기엔 조금 쌀쌀한 듯 하지만 감기를 이 날씨를 온전히 즐겼다는 훈장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도 괜찮을 듯싶다. 엄마 몫의 책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엄마가 첫 장을 낭독해 주었다. (사실 내가 읽어달라고 졸랐다.)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고 했다. 가을은 향수의 계절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걸 예감하기에 그게 슬프다...


이 메모를 읽으니 어렴풋이 그날이 떠오른다. 따뜻한 커피도 보온병에 담아서 나섰었다. 잊고 싶지 않아 적어두었는데, 적어두었다는 사실조차 또 잊고 있었다. 무언가를 잊는다는 게 왜 이렇게 슬플까. 시간과 함께 흐려진다는 그 당연한 일을 왜 덤덤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뭐가 이렇게 무서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 남는 것들이 있다.

2021년의 생일에 엄마가 전복 미역국을 끓여줬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 맛은 기억하겠지.


(글 4 : 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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