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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Sep 25. 2021

문어 다리는 열개일까 여덟 개일까

안나의 브런치 (6)


|크림 리조또 요리법 1|
양파를 잘게 다져 올리브유 조금과 함께 볶는다. 양파가 투명해지면 크림과 우유를 한 컵씩 넣는다. 끓을 낌새가 보이면 밥을 넣는다. 밥 세 공기를 넣었다. 정석적인 리조또는 생 쌀로 요리하지만 밥솥에 항상 밥이 있고 배가 고픈 한국인이라면 그냥 밥을 넣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밥솥의 밥을 모두 리조또로 만들었더니, 엄마와 실컷 먹고도 잔뜩 남아 땅거미가 내릴 때 귀가한 아빠의 저녁이 되었다. 산에서 나고 자란, 얼큰한 꽁치 찌개를 잘 끓이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보는 아빠는 크림 파스타를 참 좋아한다. 올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다. 여태 파스타는 엄마랑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생각했다. 일인칭으로 묘사하는 세상은 이리도 제한적이다. 아무리 면밀히 관찰해도 벗겨낼 수 없는 미지의 베일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게 다 그렇듯, 우리는 이 격언의 반대로 행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상대방을 내 언어로 설명하려 한다. 맞지 않는 언어로 설명하려고 드니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음이 당연한데.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은, 외부 관찰자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식론 상의 설명 - explain -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를 전달하는 -interpret-이다. Interpret은 설명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다른 언어로 옮기다라는 뜻도 있다. 어떤 사전적 정의를 통해 바라봐도 결국 타인을 함부로 나의 언어로 서술할 권리는 없음을 말하게 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통역해주기를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저 이해할 뿐이다. 




|크림 리조또 요리법 2|
말린 표고버섯도 한 줌 넣는다. 난 표고버섯을 좋아하니 한 줌 더 넣는다. 야채 스톡도 몇 숟가락 넣는다. 생 쌀로 요리했다면 넣었을 화이트 와인은 생략한다. 자숙 문어의 머리도 껍질을 벗긴 후 잘게 썰어 넣는다.

껍질을 벗겨 넣는 건 엄마의 아이디어였는데, 문어가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리조또라는 요리는 '쌀'을 뜻하는 이탈리아 단어 riso에서 유래한다. 이탈리아의 riso가 프랑스로 건너가 ris가 되었다가 영국에서 rice가 되었다.  이탈리어 단어의 근원을 파헤쳐보면 그리스어 oruza가 있다. 그럼 oruza랑 훨씬 더 비슷하게 생긴 orza가 이탈리아어로 쌀을 뜻하는 게 더 맞아 보이는데, 오르자는 쌀 모양을 한 파스타 면의 이름이다. 의미와 언어, 본질과 매개체는 참 이렇게 재밌는 관계 속에 있다.


문어도 처음엔 민머리 생선이라는 뜻의 민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파도소리가 너무 거칠어 발음이 헷갈렸는지 어느 순간 문어가 되었다. 그러다가 문어라고 부르게 된 김에 멋들어진 뜻을 붙여보자, 해서 머릿속도 까만 먹물로 차 있으니 글월 문을 붙여 어가 된 것이다. 


영어로는 octopus라고 하는데 매우 직관적으로 8개의 발이 달린 동물이라는 뜻이다. Octo가 라틴어로 8을 뜻한다. 그런데 October는 8월이 아니라 10월이다. 원래 8월을 October로 부르다 달력 체제가 그레고리력으로 개편이 되며 1, 2월이 추가되는 바람에 열 번째 달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름을 바꾸기에는 귀찮았나 보다. 문어를 잘 먹지 않는 영미권에서는 사실 octopus보다 October가 훨씬 더 가까이 있는 단어고, 어느 날 문어를 봤을 때 다리가 열개가 아니라 여덟 개임에 충분히 놀랄 수 있지 않을까.




|크림 리조또 요리법 3|
파마산 치즈도 넣는다. 가루 치즈가 아니라 생 치즈를 갈아서 넣기 때문에 이두박근이 조금 고생해야 한다.  약불 위에서 끓이다 원하는 질감이 되었을 때 접시에 담아낸다. 위에 다진 쪽파와 나머지 문어를 얹고 후추를 뿌린다.


언어는 충실치 못하다. 의미를 담아내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함과 동시에 내 세상의 한계는 내 언어의 한계인데, 언어라는 매개체는 이리도 변덕스럽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니 결국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오늘의 브런치 완성|
곁들여 먹을 빵을 굽는 동안 몇 주 전 담아둔 피클도 꺼내고 부챗살도 몇 조각 구워본다. 


지젝은, 편지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걸 제일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편지는 발송되지 않은 편지라고 해석한다. 그러니까 가장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말은 머릿속에선 작성되었지만 입 밖으로는 보내지지 않은 말이다. 이렇게 내 의미를 전달하고 나면, 더 이상 왜곡의 두려움에 속박되지 않으며 자유롭게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수십 가지 갈래로 튀어나가는 생각의 타래 중, 몇 개를 잡아 적어본 자투리 조각들. 

(글 6 : 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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