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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Mar 20. 2022

봄! 양평 나들이

춘래불사춘(來不似春)이라더니 


광풍(狂風)이 휩쓸고 간 탓일까? 뉴스에서 봄이 왔다고 남녘 꽃 소식을 전하는데 봄이 온 거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는데 봄은 아니라는 말이 뼛속까지 사무친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마음은 먼지가 되어 자꾸만 날아간다. 나를 붙들어 맬 기둥조차 사라진 거 같은 헛헛함에 자꾸 길을 잃는다. 운전하면서도 엉뚱한 길로 접어들기 일쑤, 내비게이션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할 일은 태산인데 일머리가 잡히지 않아 허둥대다 보니 이러다가는 죽겠다 싶다.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면 어쩌지. 불안이 자꾸 자라나서 심장까지 차오르는데 문득 창의적인 성취 대부분은 좋은 사람과의 상호 작용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 마음을 알아차린 건가. 오랜 세월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선배한테서 ‘밥’이나 먹자는 전화가 왔다. ‘밥’ 얼마나 좋은 낱말인가. 김지하 시인이 ‘밥은 하늘’이라며 ‘밥을 먹는다는 건 하늘은 먹는 것’이라 했다. 춘래불사춘(춘來不似春) 헛헛한 이 봄에 선배랑 ‘하늘 같은 밥’을 먹기 위해 하늘과 함께 흐르는 장강(長江)의 물길. 한강 변 옛길 따라 차를 몰았다.     



온갖 버섯에 구수콩 커피까지 


버섯 샤부샤부가 전문인 밥집은 소문난 집답게 창문 쪽 테이블은 예약 손님 몫이었다. 다소 아쉬워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자 선배가 서로의 마음 풍경을 보자고 한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훤히 알아주고 아픈 곳을 발견하면 처방전도 내주는 알뜰한 사람이다. 외진 구석 자리로 안내받아 테이블에 앉고 보니 참 괜찮다. 메뉴와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게 함께 먹는 사람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쟁반 한가득 버섯이 소복하다. 노루궁뎅이 버섯은 살짝 요염하고 동충하초 버섯은 귀물(貴物)답다. 보글보글 끓는 육수에 제 몸을 넣어도 탓을 하지 않은 버섯들. 몸 바쳐 일하는 헌신(獻身)은 바로 이런 것. 죽비로 어깨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밥    – 김지하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갈라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그렇구나. 내가 일을 하는 건 하늘 같은 ‘밥’을 나누기 위함이구나. 힘이 불끈 솟았다. 선배가 '차(茶)는 내가 살께' 추임새를 넣었다. 경기도 광주 퇴촌에서 버섯으로 기운을 차리고 차(茶)는 양평에서 음미하기로 하고 물길 따라 닿은 곳이 ‘카페 구수콩’


카페 구수콩은 담소를 나누기에 딱 좋았다. 강물을 마주 보며 나란히 앉아 대한민국 미래를 염려하는 거창한 담론부터 북한강 남한강 물길 따라 오르내리던 뗏목꾼의 떼돈 이야기 등등 눈에 보이는 풍경 따라 이야기 실타래를 풀어내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 참 좋은 참말이다.     


돌아오는 길왕창 복(받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양평군 강하면 왕창리에서 복(福)을 왕창 받았다. 하늘에 위로의 말을 담은 커다란 엽서가 눈에 와락 들어와 가슴으로 받았다. 

오늘도 당신을 응원합니다다 잘 될 거예요’ 

세상에나 이렇게 든든할 수가!     



온전히 나를 위한 엽서, 벅찬 마음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보니 갓 태어나 배냇저고리를 입은 송아지도 아는 체를 한다. 춘래불사춘(춘來不似春)이라 한탄했는데 찬란한 봄이로구나. 발바닥에서부터 기운이 불끈 솟았다.

내게 엽서를 보낸 양평군 고마워요!!! 



봄풀이 돋듯이 되살아난 직업의식 


양평군이 하늘에 걸어 놓은 위로의 엽서를 보니 직업의식이 되살아났다. 마을 역량 강화, 도시 재생, 지자체 브랜드 만들기, 스토리텔링 등 하고 싶은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마구 솟는다. 창의적인 성취 대부분은 좋은 사람과의 상호 작용에서 이뤄진다는 말을 오롯이 실감하고 서울에 돌아와서 나는 내게 <드럼 교실>을 선물했다. 수강 신청을 하고 나니 신명이 돋는다. 첫 수업을 하기 전에 핏줄에서 흰피톨 붉은피톨이 마구 요동친다. 심장이 아주 쫄깃하게 튼튼해지겠지. 작은 일에도 속절없이 잘 무너지는 내 마음에 근력이 생겼다. 나는 쉽게 깨지는 유리잔이 아니다. 땅에 떨어져도 통통 튀어 오르는 회복탄력성 높은 축구공. 비로소 동네 산책길에 새로 돋아난 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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