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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기록하는 백우리 주민들

시가 사는 마을, 아름다운 기적

by 홍안유

요즘 농촌 마을 백우리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 즐겁다. 엄중한 비상시국에 “봄이 과연 오기는 올까?” 기우(杞憂) 아닌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가도 백우리 주민을 만나면 물먹은 솜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다. 백우리 주민은 평균 연령 70세가 무색할 정도로 젊고 활기차다. 마음 따라 몸이 가는 건지 몸 따라 마음이 가는 건지 모든 주민의 심신에 에너지가 가득하다. 봄에 나무만 물이 오른 게 아니라는 걸 백우리가 증명하고 있어 마을 사업에 자신감이 붙는다. 백우리처럼 된다면 농촌 소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천시 백사면 백우리 마을 사업은 이천시(김경희 시장) 농업기술센터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백우리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 이 마을 첫인상이 남달랐다. 두 시간 남짓 대화를 해보니 어떤 역량 강화든 스펀지처럼 쏙쏙 흡수할 듯 순수했다. 그러면서 더 좋은 건 우리 마을에 이런 걸 잘하니 잘 키워달라는 주문이 쏟아졌던 점이다. 될성부른 집안은 가지 나무에서 수박이 열린다더니 백우리가 딱 그랬다. 주민과 일심동체가 되어 마을 역량 강화를 시작한 지 3개월 남짓, 백우리 사람들은 벌써 의미 있는 성과를 여럿 거두고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시 쓰기 결과물이다.


백우리 주민은 모두가 시인이다. 무심하게 툭 털어놓는 마음을 옮겨 적어 놓으면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이태백도 울고 갈 명시(名詩)로 재탄생한다. 글씨 쓰는 걸 좋아하시는 분은 직접 종이에 시를 쓰시고, 말을 더 잘하시는 분은 구술(口述)하고 한연희 부녀회장이 받아 적는다. 한연희 부녀회장은 이미 시집(詩集) 여러 권 발간한 시인이다. 시 쓰기의 즐거움을 혼자만 누리기엔 아까워 금쪽 시간을 주민에게 내어주는 마을의 인재다. 이천시에서 시낭송회가 있다든지 출판기념회가 열리면 혼자 가지 않고 주민과 동행한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이 그대로 적중하는 곳이 백우리 마을이다. 직간접적으로 시(詩)를 경험하는 기회가 쌓이니 저절로 시인의 마을이 되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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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역량 강화를 시작하면서 1월부터 본격적으로 모인 작품이 현재 약 50편이 넘는다. 시집 한 권에 대략 70여 편의 시가 수록되는데 이런 속도라면 3월 안에 70편을 넘을 전망이다. 분량보다 더 중요한 건 시의 맛! 현재까지 모인 50여 편의 시 모두가 고루 맛있다. 어느 한 구절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게 시의 영양분이 꽉 찼다. 이 중에 시인의 허락을 받아 맛보기로 딱 3편만 올린다.


나의 인생 / 이금순

허둥지둥 살다 보니 어느덧 80세

병든 몸이 겨울나무처럼 앙상하다

겨울은 나도 나무도 쓸쓸하다

나는 자식 오기 기다리고

나무는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거짓말 / 정명숙

남들은 말한다

굵고 짧게 살다 가고 싶다고

나는 가늘고 길게라도

오래 살고 싶다

뭉게구름을 보면 두둥실

날아다니며 온 세상 구경하고 싶다


시의 가치 / 文希 한연희

캄캄한 숲길을 걷게 될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시를 알기 전에는 시가

기쁨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걸 몰랐습니다

이리저리 시어를 찾아다니면

어느새 행복으로 물들어 기쁘게 됩니다

기쁨이 또 다른 기쁨을 불러오면

숲길엔 눈 부신 햇살이

마음을 꽉 채웁니다


얼마 전 백우리가 마을 방송을 시작했다. 소통과 공감의 징검다리 ‘우리 우리 백우리 마을 방송’ 첫 회 제작 때 시 낭송 코너를 마련했는데 압권이었다. 시 낭송을 들으면서 이게 바로 주민이 만든 작은 승리라며 무릎을 쳤다. 시를 쓰겠다는 작은 결심과 시를 쓰는 작은 실천이 이룬 결과가 실제 눈앞에 쫙 펼쳐지는 걸 보고 농촌 활력이 이렇게 해서 생성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백우리 주민이 일상을 기록한 시 작품에는 시를 넘어선 큰 힘이 있다. 바로 자신감이다.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면 스스로 자신의 내부에서 더 큰 에너지를 찾는다. 이 에너지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강점을 활용하는 의욕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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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욕심을 하나 더 내기로 했다. 바로 백우리 마을 시집 발간과 출판기념회다. 마을 시집 발간과 출판기념회를 통해 백우리는 스스로 더 큰 에너지를 끌어올릴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 일은 백우리 혼자 해낼 수 없다. 많은 분의 동참과 지원이 필요하다. 농촌 활성화의 힘은 주민이 문화 예술 수혜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데서 나온다. 스스로 자가 발전할 수 있는 시(詩)의 싹을 틔운 백우리에 초록 모판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 이 글을 통해 세상으로 전이되기를 소망한다. 백우리 이야기는 앞으로도 여러 편 계속 이어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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