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용 Sep 02. 2024

홍콩 영화, 아버지 이해하는 방법

나는 음악을 들으며 나이가 들어감을 느낀다. 이를테면 새롭게 발매되는 음반에 관심이 없다. 어렸을 때는 좋은 노래를 찾기 위해 주간과 월간 상위 100곡을 전부 듣고 플레이리스트를 관리했다. 심지어 노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나온다. 주말에는 새로운 음악 찾는 것이 루틴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새로운 노래를 찾지 않는다. 트렌드를 좇기보다 익숙한 음악 듣는 것이 좋아졌다.

ⓒ 첨밀밀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아버지가 이렇게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보였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 곁에 있다 보면 대만의 가수 등려군이 부른 '첨밀밀'이라던가, '월량대표아적심'을 자주 들어야만 했다. 내가 한참 음악에서 유행 좇을 때는 아버지에게 "또 이 노래 듣나?"라며, 나의 핸드폰을 차에 연결해 다른 노래로 바꿨다. 그때는 참 지겨웠는데, 이제는 그 노래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면 곧바로 아버지가 생각난다.


내가 <라라랜드>나 <비긴어게인>, <원스> 주제곡을 듣자마자 감상에 젖듯이, 아버지는 등려군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에 영화를 볼 때 느꼈던 애틋함을 느끼고, 젊음으로 순간 돌아가는 시공간을 경험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젊었을 때, 즉 서른 즈음에 보았을 만한 영화를 몰아보고 있다. <첨밀밀>부터 '왕가위' 감독 대표작을 몰아본다. <아비정전>, <중경상림>, <화양연화> 등 그 시절 홍콩 영화는 나에게 무엇하나 익숙하지 않았다.


4K(UHD) 고화질로 배우 모공 보는 것이 익숙한 시대에 픽셀이 깨지는 듯한 저화질과 어떻게 듣더라도 주먹이 닿지 않았음을 명확히 알 수 있는 효과음, '전화를 걸면 되지! 일부러 안 만나려고 저러는 거 아이가? 핸드폰이 없구나'라는 시대상까지 그랬다. 내가 문득 이 영화를 '왜 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그 시절 영화 속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이별, 외로움, 고독 등이 내 현재의 젊음을 과거 아버지의 젊음 곁으로 데려갔다.

ⓒ 중경상림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나도 그랬다. 때로는 '여명'처럼 좋아하는 감정을 다 표현할 방법이 없어 상대에게 무작정 떼를 써보기도 했고, 내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왕조위'처럼 상대를 두고서 매정하게 돌아서기도 했고, 자존심 따위는 진작 버린 듯이 '장쯔이'처럼 울며 불며 구차하게 매달려도 봤다. 내 삶은 저화질이나 인조적인 효과음, 기술이 발달하기 전의 시대상과 상관없이 과거에도 똑같이 존재했다.


오히려 과거의 젊음이 부럽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늦은 밤에 안 자는 것을 알면서 '자니?'라고 구태여 용기 내지 않을 수 있고, 인스타그램 게시물 속에서 상대의 마음을 멋대로 유추하지 않을 수 있고, 카톡에 내가 남긴 문자를 본 것일까 구차하게 확인하지 않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솔직하고, 꾸밈없이 전할 한 마디가 신중해 보였다. 명료한 말과 행동에는 낭만이랄 것이 있어 보였다. 내가 아버지의 젊음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의 젊음에는 나와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낭만이 있었겠구나.' 유추한다.


무엇보다 지금이 아버지 젊음을 추정하기 좋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만 나이는 64세, 나의 만 나이는 32세다. 아버지가 홍콩 영화를 즐겨봤을 시기도 이 즈음이고, 내가 세상에 막 태어났을 시기도 이 즈음이었을 테다. 나는 묵묵한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고 싶어서, 아버지의 젊음이 담겨있을 홍콩 영화를 본다. 나는 아버지가 '아버지'라는 존재이기 이전에, 한 명의 젊은 남성으로서 가졌던 생각과 감정을 엿보기 위해서 추적한다.

ⓒ 화양연화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나는 가수 '등려군'이나 '왕가위' 감독의 영화나 음악으로 아버지의 젊음과 낭만을 엿본다. 우리의 삶은 과거에 쌓아온 경험의 총체다. 상대를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위해 상대 과거 경험을 이해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 테다. 마치 나의 시간이 '존 레전드'의 R&B에 멈춰 있듯, 아버지의 젊음도 <첨밀밀>에 멈춰 있을 테다. 나는 이제야 아버지를, 젊음과 낭만을 이해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감정이 같음은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상대를 이해하는 깊이는 같을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상할 정도로 활, 총, 칼을 잘 쓰는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