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농담 없나?" 아캄 수용소의 교도관들은 2년 전, 살인을 저지른 죄로 복역 중인 '아서 플렉'에게 묻는다. 순응해 살던 평소라면 농담을 하고 갈망하는 담배를 얻었겠지만, 왜인지 그에게는 아무런 욕망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의 변호사가 무죄 입증을 더 소망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토록 엉망인 아서 플렉이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도록 하는 사람이 생긴다. 바로 '리 퀸젤'이다.
리 퀸젤은 자신도 학대 가정에서 자랐으며, 아버지를 잃었다고 말한다. 고립된 채 평생을 혼자 살아오다시피 한 그에게, 자신을 오롯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녀였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꽉 찬 삶을 희망했다. "우린 음악을 통해 완전해지고, 내면의 균열을 채워." 그는 말한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마음속에 사랑만이 존재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한다.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방송인에게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됐어. [...]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할 정도다. 그에게 사랑은 용기와 자신감을 준다.
사랑에 빠지면, 착각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끝도 없이 사랑한 나머지 세상이라는 무대에 상대와 나 오직 둘만 존재한다는 착각과 다양한 감정은 사라지고 앞으로 무한히 샘솟는 사랑만이 흘러 넘 칠 것이라는 착각, 상대가 완전무결할 것이라는 착각 등이 그렇다. 나도 그랬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을 말하며, 모난 정체성은 처음부터 없던 것인 양 행동하며, 상대의 단점마저 장점으로 봤다.
하지만 아무리 원대한 사랑일지라도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오직 둘 만이 존재하는 무대에서 빛나는 주인공이라 생각했건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고, 호르몬에 의해서 억제된 다양한 감정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고, 일부러 보지 않았던 단점이 또렷하게 보인다. 이때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이/사람이 변할 수 있어?" 사랑의 힘으로 변했던 것이 나였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리 퀸젤은 아서 플렉에게 나약한 모습 따위는 집어치우고 '조커'의 정체성을 드러내길 요구한다. 그는 처방받은 정신과 약을 끊어 안정감을 잃고,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변호사를 해고하며 엉망으로 행동하고, '조커' 분장을 하고서 그녀 앞에 선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는 최종 변론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인다. 자기 고백으로 죄를 인정하면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 아서 플렉은 자신의 망상 속에서 "싸늘한 분위기를 보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그녀가 사랑했던 것은 아서 플렉이 '조커'였을 때다. 원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행동하던 조커가 아닌,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감 없고, 마음 약한 아서 플렉은 그녀가 사랑했던 대상이 아니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에 빠지면서 상대를 오로지 '조커'로 대상화한 것은 그녀다. 계속해서 다중의 인격이 내면에 존재함을 증명하던 아서 플렉이지만, 더 이상 조커가 아니게 된 것은 아서 플렉이라면서 그를 거부한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왜곡됨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다.
영화의 부제인 '폴리 아 되(Folie à deux)'는 직역하면 '둘의(à deux) 광기(folie)'라는 뜻으로, '공유정신병적 장애'를 의미한다. 하지만 명칭과는 달리 꼭 두 사람으로 한정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없으며, 어느 한 사람에게 먼저 증상이 나타난 뒤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듯 나타나는 경우도 포함한다. 이 부제를 곱씹으면 리 퀸젤과 아서 플렉, 단 둘만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2년 전의 폭동뿐 아니라, 재판이 진행 중인 현재의 법원 앞 시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사랑했던 '조커'는 리 퀸젤이 사랑한 아서 플렉 내면 중 하나의 모습과 같다. 그들이 사랑한 '조커'의 모습과 아서 플렉이 다른 모습을 보이자, 사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경멸로 바뀐다. 하지만 아서 플렉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정의한 사람이었다. 모든 삶이 무너지며 포기했을 때의 모습은 아서 플렉의 본질적인 모습이라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리 퀸젤을 비롯한 사람들은 아서 플렉에게 '조커'로서 망가진 삶을 강요했다.
비록 다른 사람이 웃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농담(조크)을 건네던 그였다. 사랑은 아서 플렉에게 없던 자신감과 용기, 삶의 풍만함, 태도의 변화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가 갈망했던 왜곡된 사랑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며, 마음의 문을 닫게 하고, 속이 텅 빈 껍데기처럼 만들고, 결국은 파괴에 이르게 했다. 더군다나 스스로 정의한 삶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했다. 그렇게 아서 플렉(Arthur fleck)의 끝은, 끝내 피로 얼룩(fleck)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