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
저녁은 뜨끈한 국밥을 먹어야만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 참여로 수 시간 동안 밖에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팔 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 롱패딩에 군용 내피까지 껴입은 채 섞어 국밥을 먹었다. 가족 외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기에 사람이 많았다. 행복하게 식사하는 가족들은 보니 이질감과 함께 그들의 행복이 이어질 수 있도록 집회에 바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오래 걸려서 국밥이 나왔고, 가져다주시는 분이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미각이 둔한 편이라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다. 국밥에서 탄 맛이 났지만. 그럼에도 참고 먹었다. 밖에는 추위를 견디며 집회에 참여하고 있을 시민을 생각하니 탄 맛이 배부른 투정 같이 느껴졌다. 새우 젓도, 부추도, 양파나 마늘도 모자랐다. 하지만 빠르게 삼키는 것에만 집중했다. 뜨거운 국밥을 먹으니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옷을 벗고, 다시 입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냥 얼른 먹고 대충 닦고 나섰다.
보수 성향 지지층이 많은 부산에서, 가장 부산스러운 음식을 먹고 탄핵 집회에 가는 것은 역설적이라고 느꼈다. 서면 집회 장소는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시민과 사회적 책임 퍼포먼스와 사회적 경제 플리마켓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집회 신고를 해본 적 있는 곳이다. 따라서 그곳은 탄핵 촉구를 외쳤던 장소라기보다, 사회적 책임을 나누던 장소라 기억했다. 계엄으로 인해 다시금 탄핵 촉구를 외친 장소로 최신화되었지만 말이다.
립 밤, 입술대상 포진, 그리고 고통의 실재.
최근에 입술이 따가웠다. 나는 몸에 열이 많아서 여름에도 바디로션을 3개나 섞어 쓸 정도로 건조함을 느낀다. 당연히 입술도 마찬가지다. 보습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하루에도 수 차례씩 립 밤을 발랐다. 하지만 따가움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증상은 '입술대상 포진'이었고, 주된 원인이 면역력 약화나 스트레스 등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계엄이 직관적으로 뇌리에 스쳤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폭력적이며, 위법적이고, 현실을 의심하게 한 계엄이 전부는 아닐 테다. 그럼에도 총량을 따졌을 때, 결코 적지 않음은 확실하다. 계엄이 선포된 당일 자정 즈음에 소식을 접했을 때 거짓이나 조작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책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에서 읽고 이해한 것이 전부였기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듯하다.
계엄 선포가 국회에서 해제를 가결하는 것을 보고 겨우 잠에 들었다. 하지만 계엄 이후부터 일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고, 강아지 돌봄으로 밤에 진행되는 집회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 죄책감으로 느껴졌고, 내 사회 변화를 위한 외침은 행동 없이 이상으로만 존재한다는 자괴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학수고대한 집회 참여였기에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술의 따가움을 막아줄 립 밤이 주머니에 없었다.
국밥을 먹고 난 뒤였기에 점차 따가움의 정도가 심해졌고, 본능적으로 자주 침을 바르게 되었으며, 입술의 열을 내리려 차가운 손을 입술에 갖다 대기를 반복했다. 악순환이었다. 집에 립 밤을 챙기러 가거나 약국에서 립 밤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 고통의 감각이 현재의 상황에 강렬하게 각인되길 바랐다. 국밥의 탄 맛과 입술대상 포진의 따가움, 추운 겨울에 집회 참여하며 손 발이 얼어붙는 고통을 온몸으로 기억했다.
안전한, 주도적인, 진심의.
고통의 실재와 함께한 집회였지만, 현장에는 고통이랄 것이 없었다. 오히려 곁에 있는 시민의 존재는 국밥처럼 든든했고,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네 허물을 립 밤처럼 감싸줬다. 부산 시민들의 자유 발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직장인부터 초/중/고/대학생, 열 시간의 근무를 마치고 달려온 청년 노동자 갓 태어난 아기 아버지와 이주 배경 시민 등 대상이 다양했다.
더욱 인상 깊은 이유는 발언 공간의 안전함을 느끼면서부터다. 나는 사회복지사지만 현실이 각자도생 사회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SNS에서 넘쳐나는 혐오의 표현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차별과 편견, 불평등 심화를 직면하는 직업이기에 확신한다. 다양한 시민의 자유 발언을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편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제되지 않은 말과 때로는 과격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 다양한 이유로 어눌한 외침이 이어졌다. 하지만 누구 하나 비난하는 시민이 없었다. 발언하는 사람 목소리가 떨리고, 군중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탄핵을 촉구하는 구호조차도 시원하게 외치지 못하지만, 그들의 진심만큼은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됐다. 때로는 격렬한 박수로, 때로는 "괜찮아"라는 말로, 마지막에는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야구팀 응원가를 개사하여 노래 부르며 시민들은 화답했다.
그 공간을 함께 향유하던 시민은 주도적인 발언자와 공감하고, 발언자는 용기 낸 이야기가 안전하게 받아짐을 반복하여 경험하고, 진심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느꼈을 테다. 달러가 솟구치고, 국제적인 망신으로 공유되고, 경제는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면서 대한민국이 이대로 무너지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무너지는 것은 현 정권이다.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짐하는 부산의 밤은 겨울이 무색할 만큼 포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