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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든 것> 살인자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다면

by 김재용

똑똑. "여.. 여기가 그, 구청장님. 아 이걸 어디다 이야기해야 될지 모르겠어가지고요." 한 남자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마음이 조급해 보였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를 사무실 안에 있는 응접용 책상에 앉혔다. 그는 중간중간 시계를 쳐다봤다. 급한 일이 뒤에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천천히 그의 말을 되짚으며 정리했고, 그는 다시금 울분을 쏟아냈다.


내담자의 내밀한 이야기는 당연히 공개할 수 없다. 다만 이해를 위해 간단하게만 설명하면, 사회복지시설 중에 한 곳을 이용하다가 불만이 생긴 상황이었다. "너무 과.. 광 광 광광범위하게 이야기해서 죄송해요." 그는 대화 중간에 사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과하는 것은 이미 몸에 깊숙히 배어있는 듯했다. 잇달아서 자신이 언어장애가 있음을 고백하며 두서없이 이야기한 것에, 말을 장황하게 펼친 것에 대해, 빠르게 쏟아 낸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럼에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전에는 누구도 그의 말을 진중하게 들어주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대화 중간에 그의 말을 정리하는 것을 멈췄다. 내가 그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음을 알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동안에 시꺼멓게 쌓인 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 일정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대화하면서 느낀 것은 오직 하나다. 그가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쉬이 어기는 사람이 아님에도, 아무런 관련 없는 나와의 대화에서 자리를 뜨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참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가 반복해서 사과해야 할 만큼의 언어 장애나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는 없었다. 장애로 인한 편견 등으로 점철된 자존감 하락으로 그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빠르고, 크고, 여럿에게 외쳐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범죄자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때가 있다. 최근 시즌을 마무리 한 <너의 모든 것>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느꼈다. 주인공은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서점 매니저지만, 실상은 살인에서 희열을 느끼는 연쇄 살인마다. 그는 자신의 몸이나 자신이 사랑한다고 여기는 가족의 범주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살인을 지속하며 자신의 성향을 깨닫는다.


처음 그가 살인했을 때, 납득할 수 없는 쪽으로 기울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노력 아래서였지만, 그렇다고 타인의 목숨보다 우선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살인을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생각과 과거에 자신이 받은 학대의 경험, 가족을 향한 사랑의 열망을 보고 있노라면 점차 그의 살인이 납득이 간다. 나중에는 스스로의 살인에 대한 희열을 깨닫고 멈추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그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다.


가해자의 서사를 옹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너의 모든 것>은 실제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드라마로 만들어서 누구나 몰입할 수 있게 만든 것도 한 몫할 테다. 하지만 현실에 실재하는 피해자의 이야기는 누구도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다. 사무실에 찾아온 그의 서사는 극히 일부분이다. 수많은 형태로 실재하는 약자의 이야기는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약육강식이라는 비논리적인 논리, 소수자라는 특성으로 다른 이에게 닿지 않는다.


<너의 모든 것>의 연쇄 살인마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그의 서사를 이해하고, 그를 응원할 수 있다면, 사무실에 찾아온 그 역시 충분히 이해받아 마땅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제가 해당 기관 관리자분을 알아서요. 곧바로 조치할 수 있도록 해드릴까요?" 하지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그러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내가 그렇게 전달하는 순간 본인과 갈등이 있는 사회복지사가 곤란할 것을 걱정해서였다.


그는 이번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정신적인 치료도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지원받을 수 있도록 상담 서비스를 안내했다. 그렇게 아파하면서도, 자신을 아프게 한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나의 마음을 꾹 짓눌렀다. 그는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 죄송하다며 나에게 연신 사과를 하고 문을 나섰다. 하지만 '똑똑'하고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던 때와는 달리 발걸음이 경쾌해 보였다. 우리가 살인자의 서사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약자의 서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차분히 듣기만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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