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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는 체념은 AI 시대에도 이어진다.

by 김재용

만수는 우리네 아버지의 현재인 동시에 미래다. 그는 평생직장이라 믿고 장장 이십오 년을 제지 회사에 바쳤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 통보다. 그가 실직 이후에 갈 곳이라고는 집 안에 꾸며둔 온실뿐이다. 오히려 시간을 보낼 곳이라도 있으니 그는 다른 인물보다 상황이 낫다. 제지 회사 베테랑인 범모는 집에서 술만 마신다. 계속된 취업 실패에 자존감이 떨어져도 털어놓을 곳은 마땅치 않다.


직장이 아닌 곳에서 은은한 관계를 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가 곧 자신인 시대에 우리네 아버지는 회사의 성장을 곧 자신의 성장으로 여겼다. 직장이 나와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과 집만 반복하는 행동 패턴은 고립을 낳는다. 시대마다 두드러지는 문제가 있다. 현재는 그것이 중장년 남성의 고립이다.


만수는 고립된 범모의 상황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다른 일 하지 않고 제지 회사에만 이력서를 넣는, 내가 가진 기술을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아 무기력한, 술로 모든 고통을 견디려는 그에게 만수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만수는 범모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죽이려 했지만, 그의 삶을 보고서 오히려 그에게 조언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범모에게 하는 조언은 사실상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다.


오늘날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게 평생직장은 이미 신화에 불과하다. 다만 만수에게는 다르다. 영화에서 그의 젊은 시절이 나오지는 않지만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나, 면접에서 자신의 단점을 "싫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며 회사에 충성하는 성격을 어필하는 것이나, "몇 년 다니지 못할 회사에 재취업해야겠냐?"라는 아내의 핀잔에도 제지 회사만 고집하는 것이 이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박찬욱 감독이 2008년부터 각색하던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모가지'나 '도끼'였다고 한다. 2008년은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만수처럼 실직자가 된 사람이 많았다. 1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영화가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세대뿐만 아니라 청년인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누구든지 AI를 일상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고, AI로 여러 사람이 필요한 일을 한 명으로 대체하면 나머지는 '모가지'를 자를 수 있는 시대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은 애초에 꿈꾼 적도 없지만, 조직에 소속되는 기회조차 사라지고 있는 현재다. '쉬었음 청년'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재취업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너도나도 자영업에 내몰리고, 기대 수명은 늘어나지만 평균 퇴직 연령은 줄어드는 시대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빗대어 보여준다. 제지 기술자는 네 명이 등장하지만, 그중 일하는 기술자는 단 한 명이다. 그마저도 끝에 가면 자동화 시스템을 통제하는 관리자가 된다.


만수가 그토록 바랐던 제지 기술자로서의 삶을 기술 발전의 시대적 환경이 부정하는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의 원제목이 의도하는 바와 같이 모가지를 기꺼이 내어놓고 AI와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만수는 항상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과 행동을 한다.


이는 사회구조적으로 뒤틀린 환경에서는 우리네 아버지 같은 만수도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영화는 AI가 사람을 대체할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결국 영화는 ‘어쩔 수가 없다’는 체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회가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우리의 목은 언제든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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