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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Feb 20. 2024

달구경을 좋아하는데

Ppaarami’s Diary(34)

11월 20일


 

스리랑카에 와서 별안간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 난 나이지만 실은 달구경을 좋아하는 심야형 인간이다.

제이슨 므라즈의 'bella luna'라는 노래도 좋아한다. 달에 관한 그의 감상에 공감한다.

모든 달을 좋아한다. 보름달, 반달, 초승달.  달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밤하늘에 오도마니 떠서 다른 별들을 압도하며 신나게 빛나는 자태가 귀엽다. 밤에 길을 걷다 달이랑 눈이 마주치면 어떤 기분으로 밤길을 걷고 있었든 상관없이 나는 웃을 수 있다. 내 우주엔도르핀이다. 


  언젠가부터 추석마다 달사진을 찍었다. 소원을 비는 대신 그 해의 추석달은 얼마나 예쁜가 충분히 감상을 한 다음, 달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추석에 내가 하는 일이 되었다. 달에게 인생 상담이라도 하듯이. 선선한 저녁나절에 그러고 있노라면 나는 한껏 너그러워지고 고민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스리랑카에는 무려 '포야데이'라는 것 있다.

포야데이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불교신자들 상서로운 날이고, 금식, 절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날은 술과 고기를 팔지 않는다. 일도 하지 않는다. 휴일이다. 너무 좋다. 한 달에 한 번씩 보름달이 뜰 때마다 휴일이라니. 


  달은 매일 뜨고 진다. 보름에는 보름달의 모습으로 그믐에는 그믐의 얼굴로  하루도 빠짐없이 뜨고 진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그럴 것이다. 비바람이 불 때는 달을 볼 수 없을 뿐이다. 스리랑카는 9월부터 12월까지 우기이고 매일 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 요즘 달구경이 어렵다. 도통 달을 볼 수가 없다.

 파란 색종이 같던 하늘이 해 질 녘에 되면 귀신같이 흐려진다. 바람이 강해진면서 새카만 구름을 몰고 온다. 구름 때문에 일찍부터 날이 어두워지고 그대로 해도 져버린다. 해도 달도 별도 볼 수 없는 두껍고 무거운 하늘에서 세차게 비가 떨어지고 번개가 친다. 두 달이 넘게 거의 매일 그런 밤이 이어졌다. 나는 다른 날은 몰라도 포아데이의 보름달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몇 달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달 대신 번개를 감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피두랑갈라에서 본 시기리야락.




  달을 향한 그리움은 시기리야에서 풀렸다. 시기리야에는 두 개의 높은 바위가 있다. 

  시기리야락과 피두랑갈라.

 높은 바위이니만큼 해돋이와 해넘이 명소다. 나는 해돋이를 선택했다. 어차피 오후에는 비가 올 것이므로, 구름에 가려 달은 볼 수 없을 테니, 올라가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했다.

  새벽 5시 10분에 숙소를 나섰다. 숙소 마당의 잔디는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나는 해가 뜨는 것을 볼 기대도 조금 접었다. 하물며 달에 대한 생각이야 말할 것도 없었는데,


  숙소 대문을 나서며 고개를 들었는데 내 눈으로 세상없이 귀엽고 단아한 반달이 뛰어 들어왔다. 눈에 달이 들어왔는데도 아프지는 않고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샛별이랑 같이 사이좋게 떠있는 달 때문에 나는 바위고 해돋이고 잠시 전부 잊었다. 행복했다. 

  내가 카메라는 다루는 데 능숙했다면 그 예쁜 반달의 자태를 잘 담아낼 수 있었을 텐데, 이건 뭐 보름달인지 반달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래도 좋다. 어여쁘다. 사랑스럽다. 이게 내가 스리랑카에서 보는 마지막 달이라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날 이후 다시 열심히 밤하늘을 올려보게 됐다. 그래서 번개를 더 자주 보게 됐고 찰나의 섬광을 카메라에 담아내기에 이르렀다. 

  언젠가 우기가 끝나면 다시 만나자, 달.


시기리야, 2023년 11월 7일 새벽. 달과 별이 서로 정답게 하늘에 떠있다. 





**커버사진 : 자프나, 2023년 12월 포야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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