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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by 김정욱

1-12. '아들이 망했어요'

만 원

박스를 뜯어 안쪽면에 매직으로 크게 쓰고, 삼각대처럼 옆에 세워놓았다.

1/4은 잘라내 맨 아래 마지막 계단 구석에 깔았다.


검게 탄 얼굴에 주름이 가득.

분명 농사를 지으시던 어르신인데, 근엄한 표정으로 웃음기 하나 없이 꼿꼿이 앉아있다.

장소는 30만 중소도시 시내 중심가. S은행 입구. 명당이다.

50m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고 바로 앞은 건널목.

재래시장은 한 정거장정도 떨어져 있는데, 아무리 봐도 노점을 하기엔 어울리지 않은 장소다. 차라리 재래시장 입구라면 더 자연스럽겠지만, 노점도 니 자리, 내 자리가 있는 법.

어르신의 선택은 탁월한 것인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은행에서 누군가가 나와 어르신에게 말을 건넸지만 써놓은 내용을 보곤 들어가버렸다.

그런데 그 어르신 앞에 놓인건 농산물이 아니라 운동화. 운동화 열댓켤레.

은행고객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구경삼아 힐끗거리기는 하지만 누구라도 덥썩 관심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하기야 요새 누가 노점에서 운동화를 사겠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어르신은 아쉬운 기색도 없고 호객을 하거나 웃어보이지도 않는다.


'필요하면 사시오 - - '


무언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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