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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까비 Dec 25. 2023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

커튼을 젖히지 말아 주세요.

비가 왔다. 결이 거친 바람이 분다.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거실을 한 바퀴 돌 때- 내 몸은 낯선 공기에 부르르 떨린다. 여름이 갔음을 알리는 신선하게 도드라지는 바람의 온도. 온기가 없으니 반가운 마음이 저절로 들진 않는다. 웅크리고 창문을 닫았다.


새벽 알람 소리에 일어나, 인증을 했다. 5시 30분에서 20분으로, 그리고 5시로 기상시간을 앞당겼다. 며칠 일어나 보니 예상치 못하게 이 시간이 좋았다. 새들도 깨어나지 않은 듯 새소리도 들리지 않은 시각. 아침이 오기까지 여유가 있는 새벽이었다. 이 시간을 택한 것은 철저히 혼자 있기 위해서였다. 조금이라도 더, 조금만 더 나를 혼자 있게 둔다면 나는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다. 만족감이 차오르면 우선은 나에게, 이어 당신에게 미소를 지으며 여유 있는 태도로 또 다른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십여 분 책을 읽을 때, 인기척을 느꼈는지 엄마가 딸아이 방에서 나왔다. 나에게 다가와, 웬일인지 밤새 잠을 못 잤음을 고백한다. 이어 어제 다녀온 정형외과 후기를 말씀하신다. ‘그래, 그래, 다 좋아요. 하지만 이 시간에는 나를 내버려 두세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목소리는 삼켜지고 십여 분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손가락은 책장을 넘기고 싶어 책을 톡톡 두드린다. 결국 “알았어요. 이따가 얘기해요.” 잘 나오지도 않는 건조한 목소리로 첫 발화를 했다. “그래, 십분 병원 이야기했네.” 하면서 머쓱하게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 그리고 나는 이어 책을 읽었다.


특히 요즘 내면의 충족되지 않는 욕구는 나에게 혼자 있으라, 떠나라 신호한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바로 커피숍으로 향했다. 책을 펴고 연필을 손에 쥐었다. 문장에는 수시로 줄이 그어진다. 여백에는 문장 속에 살아 숨 쉬는 비유들을 옮겨 적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겼다. 두툼한 커튼이 그려진 그림이 나왔고, 내 눈은 커튼 너머로 고정된다. 그 안에는 어두운 문이 있다.  저 문을 빤히 응시한다. 마치 고양이가 사냥감에 집중하듯. 이윽고 부드럽고 도톰한 커튼을 만지고 커튼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갔다. 커튼 천이 툭 떨어져 내린다. 깜깜한 공간을 몇 걸음 걸어가 문을 연다. 문 닫는다. 후- 안도의 긴 숨. 마음으로 부탁한다. 커튼을 젖히지 말아 주세요.


커튼을 젖히지 말아 주세요.

내가 커튼 안쪽에 있다는 걸 모르는 척해주세요.

날 부르고 싶어 서성거리는 걸 알아요.

그 망설임을 감사히 여기고 있어요.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그때 나갈 거니-

그러니 커튼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지나면

당신의 눈을 온화하게 볼 수 있어요

그러니 커튼을 젖히지 말아 주세요


책을 읽고, 한적한 시간을 찾아 글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나는 온화함을 되찾아 미소 지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나의 오두막에까지 당신을 초대해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다. 내가 이해되지 않는가. 괜찮다. 나는 당신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 그리고 이 시간을 배려해 준 당신에게 아주 많이 고마워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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