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의 법칙을 조금 인정한 날
깨달음은 통찰로 얻은 이해
잠에서 깨자마자 나의 지성은
어제와 다른 '이해'를 하고
세상을 직관하기 시작했다.
어제까지의 무한의 '평범'들이
오늘은 유한의 '사건'으로 다가왔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움직임들.
하나의 사물이 여러 힘들에 의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에
나는 새로운 '이해'를 가졌다는
확신을 느꼈다.
출근을 위해 세수를 하고
옷을 입는 동안에도
내가 이런 인식을 하고 있다는 기쁨은
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을 잊게 했다.
'곧 도착 예정'이라는 알림을 보고도
나는 조바심이 들지 않았다.
'앗 늦었네.' 정도의 경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어제와 다른 나를 발견한 이 기분은 한번 더 나를 만족시켰다.
집에서 나가자마자 하늘을 봤고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봄의 힘으로 가득한 갓 태어난 나뭇잎은 그에 반응했다.
버스는 어떤 힘들에 의해 다행히
디지털의 예측보다 늦게 도착했고
나는 그 필연성에 기뻐하였다.
신논현역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
그 각각의 개별자들은 스스로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며 길을 가겠지만
나는 그 개별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외부의 힘을 직관하였다.
그것은 당장의 물리적인 힘을 포함하여
각 개별자들이 탄생해서 오늘까지
그들에게 작용한 힘의 총체이다.
예를 들면 '타인의 욕망'이라든가!
그래서 나는 각 개별자들이 '자기 원인'이 없음을 느꼈다.
그러므로 나를 포함하여 모든 자연의 사물들은
스스로가 만든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착각할 뿐이다.
불행과 부자유는 그 착각에서 발생한다.
그들은 단지 외부의 수많은
다른 힘에 영향받아 자기 보존을 위한
욕망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각각의 지성은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힘을 받아도 지성의 형태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의 욕망으로 발생하고
그 욕망은 각기 다른 형태의 힘을 발현하는 것이다.
타인이 자기 의지에 의해 행동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앎'은 경이롭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서운함, 시기심, 질투와
같은 불안들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남에게 휘둘렸던 나의 감정은 조금씩 그 억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지금껏 타인이 자기 의지를 가지고 일부러
나에게 그런 슬픔들을 주지 않았다 말이다!
사무실 책상 위에 가방을 두고
나는 또 어떠한 힘에 이끌려
에스프레소 머신의 버튼을 눌렸다.
커피가 갈리고 쪼르륵 소리를 내며
종이컵을 채워갈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하고 또 기뻐했다.
이런 기분은 8시간 정도 후에 점점
사라져 갔지만 다시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