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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 법무사 Mar 06. 2021

당신의 ‘성인지감수성’은 몇 점인가요?

“피곤해 보이는데 어젯밤에 남자친구랑 모텔 갔었어?” 이렇게 말했다면 성희롱에 해당할까, 안될까. 

이 말을 들은 당사자가 성적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면 성희롱에 해당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성희롱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피해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하되,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문제가 되는 성적 언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 처지에서 굴욕감과 혐오감을 느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1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1심에서의 무죄를 뒤엎고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에서 유죄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피해자다움’ 대신 ‘성인지감수성’이었다. 

성인지감수성이란 무엇인가. 백과사전에는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추어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용어는 지난해 4월 12일 대법원에서 대학교수가 학생을 성희롱하였다는 사건으로 재판하면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후 지난해 10. 25. 대법원은 친구 부인을 성폭행 한 사건에서 다시 한번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쟁점이 되었다. 이 사건은 지난해 3월 3일 전북 무주 캠핑장에서 유서를 남기고 두 부부가 자살한 사건이다. 


  용어의 핵심 의미는 ‘피해 여성의 특수한 사정을 최대한 살피라’라는 것이다. 성폭행 사건은 둘만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므로 물증이 없고, 피해자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일관성을 중심으로 판단하게 된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유무를 판단할 때 성인지감수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것이다.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한 주된 이유는 ‘피해자다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안희정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 뒤 안희정 전 지사를 위해 순두부집을 물색하고, 와인바에 함께 하고, ∧∧,  ㅠㅠ 같은 애교 섞인 이모티콘을 사용했는데, 이는 성폭력 피해자로 보기 힘든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친구 부인을 성폭행한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모텔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가고 겁을 먹은 표정이 전혀 아니었고, 모텔에서 성관계를 가진 후 가해자와 담배를 피우며 남편 등 피해자의 가정에 관한 대화를 10여 분 하다가 모텔에서 나왔는데 이 역시 피해자로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1월 27일 포장마차에서 만난 여성을 인근 건물 3층 옥상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사건에서는 성폭행 피해자가 범행 직후 가해자와 손을 잡고 웃으면서 집에 들어갔는데 이는 피해자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모두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성폭행당한 피해자가 맞는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항소심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성인지감수성’측면에서 볼 때 모두 편협한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 전 지사 사건에서 항소심 법원은, “씻고 오라”는 말에 저항이 없었던 것은 수행비서로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것이고, 사건 전후 친근감 있게 주고받았다는 이모티콘 등 메시지는 젊은 사람들이 특별한 의미 없이 사용하는 표현일 뿐이고, 이는 남성 중심적 관점에서 보는 편협한 관점이라는 것이다. 


  친구 부인을 성폭행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폭행당한 후 이미 겁을 먹은 상태이므로 여관에 들어가면서 겁먹은 표정을 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뒤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여관에 들어가 성폭행당한 후에도 바로 뛰쳐나올 수 없으므로 10여 분간 대화하고 나왔을 뿐이라는 피해자 주장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포장마차에서 만나 인근 옥상에서 성폭행한 사건에서도 항소심은, 강간 피해를 당한 직후 여성이 남성의 손을 먼저 잡은 데 대해서는 ‘피해자가 사건 발생 장소나 가해자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다소 순응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또 성폭행 후 집에 들어가 가해자와 통화하면서 웃은 이유에 대하여 ‘체념하거나 당혹스러울 때 습관적으로 웃는 특성을 가졌다’라는 분석내용을 인용하며‘허탈해서 웃을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 모두 성인지감수성을 기준 삼아 여성인 피해자 관점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고,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인지감수성을 기준삼아 유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는 ‘특정하게 정형화한 피해자의 반응만을 정상적인 태도라고 보는 것은 편협한 관점’이라고 판시했다. 그런데 이렇게 피해자 진술만을 중시하고 피해자 관점에서만 판단하면 자칫 성범죄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억울한 가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따라서 대법원에서는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명확한 예시와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남성들이여. “ 어리석게 함부로 대시하지 말자, 그러다 정말 큰 코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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