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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 법무사 Mar 06. 2021

술 핑계 대지 마라

   

  “아내는 안방 침대에서 원피스가 위로 말린 채 잠들어 있다. 거실에선 낯선 남자가 나체상태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당신은 어찌하겠는가?”


  최근 재미있는 사건이 신문에 실렸다. 술을 마시고 로스쿨 여후배 집에서 나체상태로 잠이 든 사람이 주거침입죄로 기소되었는데 1심에서는 벌금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이다. 


  형사재판을 받은 이 남성은 지난 2018년 8월 함께 술을 마시던 로스쿨 후배 여성의 집에 함께 들어가 거실에서 나체상태로 잠을 자는 방법으로 주거에 침입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신고한 남성은 눈에서 불빛이 번쩍이었을 것이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성 집에 들어왔는데 해당 여성은 원피스 차림인 데다 원피스가 말려 올려져 있고 해당 남성은 거실에서 완전히 벌거벗은 몸으로 잠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1심 법원에서는 주거침입죄가 된다고 보았다. 1심 법원은 ‘신체접촉은 없었더라도 늦은 시간에 처음 방문한 타인의 주거지에서 전나 상태로 잠든 이상 공동 주거권자의 추정 의사에 반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쉽게 말하면 신고한 남성과 여성은 이 집에서 공동으로 살고 있는데, 신고한 남성 입장에서 볼 때 이 두 사람이 이렇게 자기가 사는 집으로 들어와 벌거벗은 몸으로 잠자는 것까지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반면 항소심에서는 ‘해당 남성은 주거에 들어갈 당시 상당히 술에 취해 있었고 오랜 자취생활로 집에서 옷을 벗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라며‘당일은 무더운 한여름이고 해당 남성은 긴 팔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또한, ‘해당 남성이 답답함을 느끼고 타인의 주거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평소 습관대로 옷을 모두 벗은 후 거실에서 잠이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아서 주거침입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어떤가. 당신이라면 주거침입죄가 인정된다고 보는가, 안된다고 보는가. 여기서 주거침입죄란 무엇인가를 간단히 살펴보자. 주거침입죄란 사람의 주거에 침입하면 성립하는 범죄다. 하지만, 사람의 주거에 침입하기만 하면 모두 이 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주거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야 이 죄가 성립한다. 예를 들면, 우편이나 소포배달은 해주기 위해 집주인 허락 없이 들어갔더라도 주거침입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편이나 소포배달을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당연히 집주인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정당한 목적으로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이라면 침입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점은 주거에 들어가는 사람이 고의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집주인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간다는 고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이 모두 갖추어져야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이 사건의 사실관계로 되돌아가 살펴보면, 1심과 2심 법원에서 왜 판단을 달리했는지 알 수 있다. 1심 법원에서는 주거권자의 의사에 방점을 찍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체접촉이 없었다고 하지만 집주인으로서는 늦은 시간에 처음 방문한 타인이 주거지에서 전나 상태로 잠자고 있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반면, 2심 법원에서는 해당 남성이 집주인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갔는지에 대한 고의 여부 판단에 방점을 찍었다. 해당 남성이 주거에 들어갈 당시 상당히 술에 취해 있었고, 오랜 자취생활로 집에서 옷을 벗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 또한, 당일은 무더운 한여름이었는데 긴 팔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기에 답답함을 느끼고 타인의 주거지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평소 습관대로 옷을 모두 벗고 거실에서 잠이 들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을 적용하여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해당 남성이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행위를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무죄는 선고되지 않았을 것이다. 맨정신으로 이런 행위를 하였다면 처음부터 부정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으니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나체상태로 자보자는 생각으로 한 것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는 ‘원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행위’로 고의로 취급된다. 


남성들이여, 술 핑계 대지 말라. 그놈의 술이 웬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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