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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Feb 25. 2024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건


오늘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좋아하는 노래들이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샤워 부스에 들어가는데 갑작스레 눈물이 맺혔다. 그냥 뭔가 눈물 같은 감정이 올라오는 거다. 하루종일 건조했던 눈이 촉촉해졌다. 일단 그뿐이었다. 눈물이 흐른다던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 눈물에 명확한 이유가 없었다. 근데 몇 초간은 진짜 울 것만 같았다. 샤워를 하는 동안 나는 이 기분을 되물었다.


사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발작적인 증세가 일어나서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원인은 몰랐다. 하고 있는 일들도 잘만 되어가고 나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스트레스도 정말 없었다.




오늘은 운동을 좀 늦게 갔다. 23시에 닫는 헬스장에 22시 30분쯤에 갔다. 느적거린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보기가 싫었다. 1인 헬스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래도 운동을 안 가겠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무조건 가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하루의 끝을 운동으로 맺는 건 정말 중요하다. 아마 나중에도 운동은 꾸준히 할 것 같다. 다행히 토요일의 늦은 헬스장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러닝머신을 타고 있는 사람 둘.


남은 시간 30분. 시간이 없다. 만들어 놓은 ‘운동쏭’ 재생목록의 첫 번째 음악을 틀고 걷기 시작했다. 3분이 채 지나기 전에 다른 곡으로 바꾸고 달렸다. 그렇게 뛰었다가 걸었다가를 반복하며 숨이 가빠졌다. 며칠 만에 뛰는 거라 다리가 아팠다. 숨은 남았지만 다리가 아파서 오래 뛰기가 어려웠다. 뛰다 보니 배도 아팠다. 땀으로 범벅이 되고 싶었지만 한계였다. 약간의 땀만을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운동은 잘 갔다고 생각했다.



씻고 나와서는 엄마와 이야길 나눴다. 최근에 내 예상을 벗어나는 사건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났다. 인생이 참 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이 사실을 현실에서 마주하기란 언제나 낯설게 느껴진다. 그런 걸 보면 아직 제대로 모르는 걸라나. 뭐, 살아가며 차차 익숙해지겠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럴듯한 원인을 알아냈다. 몇 달 전부터 마음 한 켠에 새겨두었던 그것. 그것에 관해 정확한 말은 하기 싫다. 지금의 나는 쿨하지 못한 상황인 것 같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는 할 수 없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 새겨둔 그것을 수정할 상황에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것’은 ‘두려움이 만들어낸 오류’다. 오류라는 것을 알지만서도, 진실은 무엇인지 알지만서도, 받아들이기란 여전히 껄끄럽다. 왜 그럴까. 과거에 너무 호되게 당해서일까. 그것을 트라우마라 칭하고 극복하지 못할 것으로 만들기는 싫다. 트라우마는 극복하고 싶지만 극복하기에 너무 어려운 것을 일컫는 말 아니던가. 나는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꽤나 쉽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럼 지금의 나는 무얼 해야 할까. 솔직히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마음의 공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니까. 그저, 예전과 지금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서 중요한 것들에 시간을 쏟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지금 내게는 ‘그것’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나는 원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나를 한계 짓지만 않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해당할 거다. 그들 중에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내가 어느 정도까지 살아볼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삶을 경험했다. 그러고서 생각하는 대로 사는구나를 느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나는 극복해 낼 수 있는 사람이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것 또한 극복해 낼 거다. 그러니까 극복할 나를 믿을 거다.


왼쪽 : 아빠 / 오른쪽 : 나



지금의 내 글은 아주 두루뭉술하다. 아까도 말했듯 나는 아직 그것에 있어 쿨하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낸다면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와닿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건 나는 그것을 이 글 속에서는 구체화하지 않을 거다. 내 마음속에는 그것이 아주 선명해졌다.


트라우마 비슷한 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다. 그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아직 마음이 불편한 나에게도.


그것을 트라우마로 퉁치고 매번 그것만 나타나면 불편해하며 살 것인지,
그때와 지금이 어느 정도로 다른지 인식하며 떨쳐내고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그것을 트라우마로 칭하고 극복하지 않기를 선택한다면, 멋진 나를 마주할 기회를 버리는 거란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또 한 번, 자신의 가능성을 한계 짓는 행동을 선택한 거다. 별 거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이 쌓이면 삶의 태도가 된다. 그리고 태도는 삶을 바꾼다. 사람은 상상하는 대로 사니까.


삶은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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