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후루룩 읽기 쉬운 미스터리 서스펜스 소설이다. 내용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데, 변해가는 자신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선이 매력적이고 본래의 자신을 찾기 위해 진실을 파고드는 주인공의 주체적인 태도가 인상적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나루세 준이치. 기계 관련 업무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취미는 그림 그리기이다. 자신의 애인을 모델로 삼아 영감을 얻는다. 그는 직장 내에서 소시민적인 태도를 취하고 눈치를 보며 상황을 회피하는 성향을 보인다. 그렇게 매일 그럭저럭한 하루들을 보내는데, 이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부동산에서 사고를 당한다. 강도가 들이닥쳐 소녀에게 총을 쐈는데 주인공이 소녀를 감싸 대신 총에 맞은 것이다. 그것도 머리를 관통하여 뇌 일부를 잃게 된다. 의식을 되찾으니 연구소 입원실이었고, 도겐 박사를 통해 도너(가명)라는 사람의 뇌 일부를 이식받았음을 알게 된다. 그의 뇌와 도너의 뇌의 적합성이 아주아주 높아 가능한 수술이었다. 십만 분의 일 확률이었다 하니, 어차피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죽을 운명이었으니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연구소에서 어느 정도 휴식기를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에 출근한 후부터 점차 발생한다. 함께 일해왔던 회사 동료들이 게으르며 멍청해 보이는 것이다. 그는 그들의 비효율적인 일처리 방식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기계공으로서 건의안이나 기술 연구에 열의를 보이고 많은 양의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사고 이전에는 그럴만한 머리도, 흥미도, 용기도 없는 그였다. 팀장은 열정적인 그의 모습을 칭찬하지만, 이내 비효율적인 방식을 따르는 것에는 조직 안정성 기여, 관습 등의 이유도 있다며 회사 사람들을 두둔한다. 하지만 그는 관습보다 효율을 중시했기에, 치미는 분노를 막지 못하고 회식 자리에서 한 회사 동료를 때리기까지 한다. 그러고 다음 날, 깨어난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등 자신의 행동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의 자신은 겁이 많고 내성적이라 자신의 주장도 별로 없을뿐더러 누군가를 때린 적도 없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변화는 쉴 틈 없이 나타난다. 좋아했던 그림을 그리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고 억지로 그려본 그림의 그림체도 거칠게 변했다. 뿐만 아니라 애인에 대한 마음도 변한 듯 보인다. 이런 변화들에 주인공은 계속해서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억지로라도 그림을 그리고 여자친구를 사랑하려 한다. 좋아하던 영화를 보며 억지웃음도 지어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포기한다. 예전의 자신을 따라 하려 할 때마다 머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자신 안의 무언가가 본래의 자신을 찾는 것을 허용치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식된 뇌의 주인은 누구인가?
준이치는 이 의문을 가지고 뇌 기증자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뜻밖의 사실을 마주한다. 도겐 박사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기증된 뇌는 그날 소녀에게 총을 쏜 강도 교고쿠 신스케의 것이라는 사실. 이 진실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이제 주인공은 예전의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이식된 교고쿠의 뇌는 남은 그의 흔적을 빠르게 잠식시킨다. 참을성과 인내를 발휘하지만 비집고 나오는 교고쿠의 모습에 의해 그는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 사실상 뇌이식 수술은 실패했다. 하지만 이를 진행시켰던 단체에서는 자신들의 실패를 감추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를 사고사로 죽이려 한다. 쫓기던 그는 애인의 집에서 잠시 몸을 숨기지만 이내 발각된다. 납치된 곳에서 어찌저찌 탈출을 하고, 그는 연구소로 돌아가 도겐 박사에게 이식한 뇌를 다시 꺼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이식한 뇌를 꺼내게 되면 그는 죽거나 의식불명인 채로 살아야 한다. 이에 도겐 박사는 거절한다. 수긍하고 돌아가는가 싶더니, 망설임 없이 총을 꺼내 자신의 오른쪽 머리, 즉 이식된 뇌가 있는 쪽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도겐 박사는 어쩔 수 없이 교고쿠의 뇌를 꺼내는 수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의식 불명인 채로 살다 얼마 안 가 생을 마감한다.
내용이 전개될수록 문체도 거칠어지고 상황이 빠르게 변화한다.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너무 빠른 전개에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의도한 것 같기도 하다. 교고쿠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문체이기 때문이다. 쉽게 욱하고, 폭력적이고, 깊이 여러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행동하는 교고쿠의 성격. 주인공은 교고쿠가 이런 성격을 지니게 된 이유도 알아내고 교고쿠의 주변인을 만나보며 그를 알아간다. 주인공은 자신을 겁 많고 불의를 적당히 못 본 척하며 평범함을 좇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뇌를 이식한 후부터 주체적이고 단호한 정의 실현을 넘어, 너무 과격하고 잔인해진 자신을 인지하고서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나는 처음에, 당연히 새로운 뇌의 영향도 있겠지만 사람은 뭔가 큰일이 일어나면 성격이 변한다고 생각해서, 자연스러운 변화이지 않나 생각했다. 제목 그대로, 사소한 변화일 뿐이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자신인 채로 사는 것이 아닌, 남의 정신이 자신의 몸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있는 것인지, 교고쿠가 살아있는 것인지 혼동한다. 나도 그가 윤리적 죄책감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부분부터 무언가 잘못되어 감을 느꼈다.
과학적으로 그의 뇌와 교고쿠의 뇌는 거의 일치할 정도로 적합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 사소한 차이가 이렇게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사소한 선택들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일상에서 이 영향을 가장 많이 느끼곤 한다. 매일 가던 산책로가 아니라, 조금 색다른 길을 선택해 보는 것. 매일 먹던 음식이 아니라, 조금 색다른 음식을 먹어보는 것.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해 보는 것. 귀여운 소품샵을 구경해 보는 것. 내가 매일 10쪽씩 읽고 있는 책 <그릿>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새로움 속의 익숙함, 약간의 새로운 변화가 있는 익숙함이다”. 우리는 챗바퀴처럼 반복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학교를 가야 하고 회사를 가야 하고 다시 집으로 가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고. 하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새로움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일상 속에서 사소한 선택들로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즐겁고 좋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여유로움을 좋아한다. 지금 따뜻한 작업실에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순간이 참 여유롭고 느긋하고 좋다.
그리고 두 번째,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필요한 지 가장 잘 아는 건 자기 자신이다. 삶의 방식이 아무리 비슷하더라도 동일하지는 않다. 각자에게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가능하다. 그저 현재 느껴지는 것, 직관적으로 와닿는 것을 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꽤 꾸준히 해봐야 할 것이다. <그릿>에서는 열정도 중요하지만 끈기도 아주 중시한다. 이 책에서는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믿고 꾸준히 새로운 방식들을 시도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을 고등학교 3학년의 공부에서 꽤 실천했던 것 같다. 나는 손이 가는 대로 즉, 그나마 하고 싶은 과목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점점 재미있는 방식으로 해 나갔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써 볼 예정이다. (한 번 읽어주세용..)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주인공은 교고쿠의 뇌에 잠식해 가는 과정 속에서도 본래의 자신을 찾으려는 절실한 모습을 보인다. 그때의 그는 결코 겁이 많거나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실을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변화하는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한다면 죽음을 택하는 결단까지 보여주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 나의 정신으로 삶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그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