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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여운코끼리 Jun 18. 2021

오늘도 넌 내게 위로를 건넨다.(두 아들맘의 육아생활)

# 11 내 아들의 여자 친구

어릴 때는 예민하고 자기 세계가 있었던 첫째는 자라면서 무던하고 밝은 딱 8살 그대로인 느낌이어서 언제 저렇게 컸나 요즘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남자아이 특유의 엄마와 대화 거부 스킬을 시전 한 첫째는 엄마한테 비밀도 많고, 요즘은 부쩍 여자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 한다. 그냥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입던 유치원 때와는 달리, 맘에 안 드는 옷이 나오면 "엄마 바지 다른 것 입으면 안돼요?" "이제 캐릭터 옷은 안 입을래요."라며 자기 나름대로 멋짐 뿜 뿜 하는 모습으로 등원한다. 머리라도 뻗친 날이면 어찌나 거울을 보는지.......


어느 등교 길, 아이는 아끼는 피규어를 가방에 달다가 내 눈이 닿으니 잠시 멈칫했다. 아이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엄마의 감으로 첫째가 감추고 있는 게 있다는 게 느껴졌다. 급히 눈을 피하는 아이, 명탐정으로 분한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첫째야, 그 피규어는 왜 가져가는데?"

뭔가 걸렸다는 것을 직감한 첫째는 바로 이실직고한다.

"사실은 엄마, 제가 이 피규어가 집에 있다고 하니까, 친구 두 명이 이것을 갖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걸 엄마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친구에게 주려고 한 거야?"

"친구가 너무 갖고 싶어 해서요."

"그렇지만 갖고 싶다는 친구가 두 명이라면서, 만약에 네가 한 명에게만 그 피규어를 주면 다른 한 명이 서운하지 않을까? 그리고 네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엄마 아빠 돈으로 사준 거니까 네가 마음대로 친구에게 물건을 주거나 할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최대한 차분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 둘은 여자 아이들이고, 첫째가 친하게 사귀고 싶어서 피규어를 주고 싶다고 했다. 그중에 한 명은 쌍둥이라고도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주 정석대로 장난감을 함부로 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등굣길 내내 꼼꼼히 이야기를 했고, 아이에게 재차 확인도 했다. 아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연히 아이가 엄마 말을 알아들었으리라 의심치 않았다.  


다시 만난 하굣길, 첫째의 가방에 피규어는 없었다. 나는 설마 설마 하면서도 아이에게 물었다.

"첫째야, 피규어는 어디 갔어?"

"친구에게 주었어요."

"응? 친구에게 주었다고?"

"네."

아이는 비장하게 그러나 나의 눈은 피하면서 대답한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침에 입이 닳게 한 나의 말은 허공로 날아가 버렸구나!'

민망한지 평소와는 다르게 나를 저만큼 앞서 가는 아이를 따라간다. 아이는 어느덧 신호등에 닿았다. 나는 다시 입을 뗐다.  


"근데 첫째야, 아침에 엄마가 너에게 장난감을 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니?"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첫째가 갑자기 버럭 성을 낸다.

"네! 줬어요! 엄마는 제가 무슨 대답을 하길 원하세요?"

신호등에 서 있던 엄마들이 죄다 우리 모자를 쳐다보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태도와 어휘의 조합에 나는 잠시 멍하고 할 말을 잃었다. 문득 잘못했을 때 되려 화를 냈던 연애시절의 지 아빠랑 똑 닮았다는 생각도 들고, 초1이 벌써 엄마 말도 안 듣고 여자 친구에게 장난감을 주면 나중에는 어쩌려나 걱정도 됐다. 우리 시어머님인 우리 남편을 보며 이런 기분이셨을까? 여하튼 짧은 순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갑자기 커버린 아이가 멀게도 느껴졌다.


그러다가 나는 그냥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아이가 벌써 많이 컸구나 싶기도 했고, 늘 말을 잘 듣던 애가 얼마나 친구에게 장난감을 주고 싶었으면 저럴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목소리를 다듬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첫째야, 아침에 분명히 엄마가 이야기를 했는데 네가 그 말을 듣지 않고 친구에게 장난감을 준 것은 잘못한 거야. 엄마는 앞으로 너에게 가방에 피겨를 달고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게 할 거야. 그리고 잘못을 했는데 엄마한테 그렇게 소리 지르며 이야기하는 것도 잘못된 거야. 네 마음은 알겠지만 잘못한 건 인정을 해야지."

아이는 그제야 "죄송해요."하고 대답을 했고 그 사건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고서 대충 한 달쯤 지났을까? 나는 하교 길에 첫째가 피규어를 주었다던 쌍둥이 여자 아이들을 마주쳤다. 첫째와 제법 친하고, 첫째가 좋아하는 친구라고 하기에 눈길이 갔다. 아이들은 모양은 같고 색깔만 다른 가방을 메고 있었다. 나는 첫째에게 물었다.

"첫째가 저번에 피규어를 준 아이는 보라색 가방을 멘 아이야? 아님 분홍색 가방을 멘 아이야?"

"모르는데요."

첫째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대답을 한다.

"응? 좋아하는 친구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서 피규어 준 아이가 누군지 모른다고?"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나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

"엄마도 참, 쟤네들은 똑같은 쌍둥이라서 얼굴도 똑같고, 목소리도 똑같고 말하는 것도 똑같단 말이에요. 근데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아요?"

아이는 엄마인데 그런 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되려 어이없어하며 나에게 대답했다.  


아!
그러면 그렇지, 너는 아직 8살 내 아들이구나.
갑자기 18살처럼 멀게 느껴졌던 아들이 다시 8살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아이의 하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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