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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마워.

너에게 보내는 편지.

by 온 아무

H. 안녕?

곧 우리가 함께 맞이하는 7번째 결혼기념일이야.


너와 처음 만나던 날이 기억나.

스타벅스 앞, 갈색 코트를 입은 채 수줍게 미소 짓던 너.

우연히 당첨된 무료 음료 쿠폰이

우리를 다음 만남으로 이어줬지.


H.

너를 만나기 전 나의 20대는 그저 그랬던 것 같아.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 주어진 삶이 소중한 줄도 모른 채

그저 버텨내고 있었거든.


너를 만나고,

너를 사랑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일을 꿈꾸게 됐어.


네가 보고 싶다.

너와 함께 하고 싶다.

네가 내 손을 잡아주었듯,

나도 네 손을 잡아주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하게 되었지.


그런 것 있잖아.

애쓰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서로를 채워주는

나에게 있어서 너는 그런 존재야.



H.

너에게선 언제나 여름 숲 냄새가 나.

네가 숲 내음 가득 품고 집으로 들어서면,

나는 아침 햇살을 가득 머금고 너에게로 향해.

네 숲 내음으로 내 가슴이 가득 차오를 때.

나는 오늘 하루도 살아있음을 느껴.


행복해.

눈이 시릴 만큼.

그래서 너를 바라볼 때면

가끔은 눈물이 나기도 해.

만일 너를 닮은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를 바라볼 때도 이런 눈물이 나지 않을까?

고맙다는 말로는, 사랑한다는 말로는 표현 못할 만큼 시리고 시린 눈물이야.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가장 사랑하게 된다는데

나는 누군가를 너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아직 상상이 안돼.


우리에게 아이가 생길까,

생기지 않을까.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면

하늘이 정말 우리 사이를 질투하시는 걸지도.

그래도 혹시나 널 닮은 아이가 생긴다면

꼭 너만큼 사랑해주고 싶어.


만약 우리의 삶에 아이가 없더라도

난 괜찮아.

너로 인해 아이 있는 삶도 꿈꾸게 됐으니까.


그래도 너와 살아갈수록

널 꼬옥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해.

네 눈

네 모든 것이 난 좋아.



H.

아주 가끔

먼 훗날 네가 없는 삶을 상상해.

그럴 때면 고요한 벼랑 끝에 선 듯

모든 것이 아득해져.


그 두려움 속에서 나는

오늘 하루도 너를 더 아끼고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해.


앞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을 감사하며.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

사랑하는 너에게

당신의 햇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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