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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라자일렌 Mar 09. 2021

이란 여행 후기 1

이란과 시아 이슬람

 이란에 처음 발을 디딘 여행자라면 설령 배경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어떻게든 호메이니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주요 관공서마다 그의 사진이 걸려 있으며, 이란 지폐 등장인물을 호메이니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50,000리알 지폐. 고액권 같지만 속지말자! 실질가치가 500원도 채 되지 않는다.


 테헤란 남쪽 외곽에는 Haram-e Motahr-e Imam Khomeini(حرم مطهر امام خمینی(ره))라는 이름의 호메이니 영묘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곱게 죽는 데 성공한 독재자들은 거대한 무덤을 짓는 취미를 공유하며, 이 점에 있어서는 호메이니 역시 예외가 아니다. 혹시나 호메이니의 사상에 공명하는 분들이 계실까 하여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여기서 독재자라 함은 폭군이란 의미가 아니라 '권좌에서 그를 끌어내리는 데 필요한 절차가 평균적인 민주정의 지도자에 비해 다소 복잡하거나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은 최고 권력자'라는 의미이다.


호메이니 영묘 입구의 기하학적 조형물


 영묘 입구의 조형물에 쓰인 글귀를 살펴보자. 위쪽의 정육면체 부분에는 시아파 3대 이맘인 후세인 이븐 알리(حسین بن علی)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안녕하세요 이맘'이라는 뜻의 '살럼 이맘(سلام امام)'이라고 적혀 있다. '호메이니도 이맘이라능!'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방문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Haram-e Motahar라는 타이틀이 부여된 영묘는 필자가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호메이니 영묘를 제외하면 시아파 8대 이맘인 레자의 영묘밖에 없다. 참고로 레자는 12이맘 중 이란 영토 내에 안장된 유일한 이맘이다. 나머지는 다들 이라크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묻혀 있다.


  

 위 사진은 마슈하드 공항에 걸려 있는 이맘 레자 영묘 내부 사진이다. 가운데가 이맘 레자가 안장된 곳이다. 사람들이 다들 무덤 한번 만져보려고 성화인 데서 시아 이슬람에서 이맘이 갖는 지위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본래 시아파에서 이맘은 무하마드의 적통 후계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이란의 국교인 12이맘 시아파 교리에 따르면 12대 이맘인 마흐디가 사라진 이래 이맘의 대가 끊겨 있는 상태이다.


이란 국교 12이맘 시아파의 열두 이맘 - 1대 알리(제일 가운데), 2대 하산(알리의 왼쪽), 3대 후세인(알리의 오른쪽) 순으로 이어지며, 제일 왼쪽이 12대 마흐디이다.


 하지만 이맘은 실무적으로는 현존하는 고랭커 성직자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종종 쓰인다. 부처 승급 요건을 채웠음에도 열반하지 않고 지상에 잔류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보살이 불교신자들끼리 서로를 높여 부르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하겠다. 물론 보살님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이맘 소리를 듣는 것이 백만 배는 어렵지만 말이다. 아래 사진 중앙 포스터에 그려져 있는 터번 쓴 인물은 레바논 시아파에서 '이맘 무사 사드르'로 불리는 인물이다.

레바논 헤즈볼라의 본거지인 다히예에서 촬영한 이맘 무사 사드르의 포스터

 문제는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사상적 근간이 벨러야테 파기(ولایت فقیه)라는 것이다. 이맘 부재 시에 고랭커 시아파 법학자가 이맘을 대리하여 정치와 종교 양쪽의 최고지도자(Rahbar, رهبر)가 되어야 한다는 교리이다. 때문에 이란에서 이맘이라는 단어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울림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초대 최고지도자가 바로 호메이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란 정부나 시아파 종단이 공식적으로 호메이니가 제13대 이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구글에 페르시아어로 '호메이니는 이맘인가?' 혹은 '왜 호메이니를 이맘이라고 부르는가'라고 검색해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이맘에는 무하마드와 알리의 적통 후계자라는 의미 말고도 지도자나 리더라는 의미도 있으며, 후자의 의미로서 호메이니를 이맘으로 부른다는 설명들이 나온다. 금요 예배를 인도하는 설교자를 Imam Jomehامام جمعه라고 부르는 것을 비슷한 예로 들고 있다. 이란 시아파 종단의 공식 매체인 <Hawzahnews>의 <왜 이맘 호메이니와 혁명 최고지도자를 '이맘'이라고 부르는가>라는 기사에 나온 내용인 만큼 충분히 공신력이 있다 하겠다.(아래 링크 참조, 페르시아어 주의)


https://www.hawzahnews.com/news/871475/%DA%86%D8%B1%D8%A7-%D8%A8%D9%87-%D8%A7%D9%85%D8%A7%D9%85-%D8%AE%D9%85%DB%8C%D9%86%DB%8C-%D9%88-%D8%B1%D9%87%D8%A8%D8%B1-%D9%85%D8%B9%D8%B8%D9%85-%D8%A7%D9%86%D9%82%D9%84%D8%A7%D8%A8-%D8%A7%D9%85%D8%A7%D9%85-%D9%85%DB%8C-%DA%AF%D9%88%DB%8C%DB%8C%D9%85

 하지만 진짜 그게 이유였다면 현 이란 대통령인 하산 로하니라고 해서 이맘 소리를 못 들을 이유가 없을 텐데 '이맘 로하니'라는 표현은 듣도 보도 못했다. 시아파 성직자 최고위 타이틀인 마르자에 타클리드(مرجع تقلید)라고 해서 이맘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맘 호메이니' 혹은 '이맘 하메네이(현 최고지도자'라는 어구에서 '이맘'이 갖는 뉘앙스가 너무 분명하지 않냐 이 말이다.


 아무래도 '이맘 호메이니'할 때의 이맘은 '김정은 장군님'할 때의 장군님 같은 호칭인 것 같다. 공식적으로야 장성 혹은 지휘관이면 누구나 장군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실제로 북한에서 장군님 소리를 듣는 사람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 사람뿐이니 말이다. 조금 전 구글에 김책 장군님이라고 검색해봤는데 김책이 장군님께 어쩌고 하는 구절들밖에 안 나온다. 김책이면 함경북도 성진시의 이름을 뺏어갔을 만큼 북한에서는 나름 네임드 군인인데도 말이다.



 호메이니 영묘 중심 건물에는 호메이니, 하메네이 굿즈를 판매하는 기념품점이 있다. 이곳에서 호메이니와 하메네이가 그려진 프린트 티를 한 장 구입하였다. 가격은 200,000리알로, 당시 환율 기준 우리돈 2천원 조금 더 되는 금액이었다. 티셔츠에 적힌 문구는 대충 의역하자면 '벨러야테 파기를 결사옹위하리라'정도가 되겠다.


호메이니가 안장되어 있는 구역

 

 독재자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은, 그들이 내가 참여하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는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호메이니 영묘의 중심부에서, 호메이니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호메이니 영묘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젊은 청년을 만났다. 필자에게 호메이니 책도 한 권 사인해서 줬었는데 어디다가 뒀는지 못 찾겠다. 그가 필자보고 신을 믿느냐고 묻길래 거의 안 믿는 것에 가깝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어떡할 거냐, 이 세상이 우연히 생겨날 수 있다고 믿냐는 식의 질문을 퍼부었다. 전자의 질문에는 그럴 때는 필자 역시 신을 찾으며 다만 어려움이 해결되고 나서는 까먹는다고 대답하였다. 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그럴싸한 대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필자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이란인들은 비단 강성 호메이니 지지자들만이 아니다. 호메이니를 극혐하는 필자 친구들조차 필자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졌었다. 테헤란에 머무는 동안 친구 어머님이 인도하시는 <Erfan-e Keihani-ye Halghe عرفان کیهانی حلقه, 이하 에르펀)라는 이름의 대안적 이슬람 운동 종교집회에 몇 번 참여했었다. 그곳에서 다른 참가자들에게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 고산병 때문에 죽을 뻔해서 신에게 낫게 해 주면 하산 뒤 신을 열심히 믿겠다는 기도를 했는데, 하산길에 대충 해발 1,500미터 지점에서 신을 깡그리 잊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유창한 페르시아어를 구사하는 기특한 외국인 친구가 하필 신에 대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꽤나 안타까워하며 역시나 세상의 기원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테헤란에서 참석했던 에르펀 모임.

 에르펀 모임에 나갈 때마다 에르테버트(연결, ارتباط)라는 이름의, 신과 합일을 도모하는 명상 비슷한 의식을 했었다. 단순 명상이 아니라 현실 문제의 해결에도 유용한 수단이라고 한다. 이란 레짐 체인지도 가능하겠냐는 드립을 날렸더니 교세가 더 커지면 가능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에르펀 공화국(Jumhyuri-ye Erfani, جمهوری ارفانی)이라고 외치며 아주머니의 대답에 회답했다. 여담이지만 에르펀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필자는 세계 4대 종교의 종교의식에 모조리 참석해 보는 기염을 토했다.(참고로 불교는 중국 쓰촨 성 간쯔티베트족자치주에서, 힌두교는 인도 라자스탄 주 푸시카르에서 클리어했다.)


 친구 어머니는 참가자 중 아픈 이의 몸을 어루만지며 안수기도 비슷한 것도 했다. 나중에 자료조사를 해 보니 아주머니가 했던 것은 fardarmaniفرادرمانی라는 것이다. 에르펀 세계관의 핵심인 cosmic sense network(شبکه شعور کیهانی, shabake-ye Shour-e Keihani)에 스스로를 연결(에르테버트)하여 우주의 에너지를 느낌으로써 질병을 치료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에르펀 친구들은 무하마드 이래 인간들에 의해 형성되어온 상징과 관습체계를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신봉하기보다는, 그냥 세상에 보편적 유일신이 존재하는 데 그와의 합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 유일신을 기독-유대 식으로 야훼라고 부르든, 조로아스터 식으로 아후라 마즈다라고 부르든, 이슬람식으로 알라라고 부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이슬람이 뿌리내린 사회에 마침 태어났으니 코란이 유일신을 향한 일차적 힌트가 되었을 뿐이다. 오죽하면 필자한테도 이란 여자 소개해줄 테니 그전에 종파 불문 유일신 하나만 믿고 와!라고 일관되게 얘기할 정도이다. 레바논에 갔다 온 이후의 필자였다면 드루즈파나 알라위파도 가능?이라고 물어봤을 텐데 아쉽다.


 필자가 이란에 방문했을 당시 에르펀 창시자인 무하마드 알리 터헤리(محمد علی طاهری)박사는 수감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아주머니도 한 달간 옥고를 치른 적이 있다고 했었다. 다행히 현재는 교세가 꽤 커져서 함부로 잡아가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필자가 귀국한 몇 달 후 무하마드 알리 터헤리 박사도 출옥했다.


에르펀 창시자 무하마드 알리 터헤리 박사


 이란인들은 호메이니 같은 시아파 성직자를 어훈드(آخوند)라고 부르는데, 멸칭 느낌이 섞여 있으니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로허니(روحانی)라고 불러야 한다. 필자가 마지막으로 이란에 다녀온 직후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는데, 당시 시위대가 외친 구호 중에는 '어훈드 공화국에게 죽음을(Marg Bar Jomhuriye Akhoondi, مرگ بر جمهوری آخوندی)'라는 것도 있었다. 참고로 앞서 말한 호메이니 영묘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청년의 이름은 무려 무하마드 마흐디 어훈디(Muhammad Mahdi Akhoondi, محمد مهدی آخوندی)였다. 창시자 무하마드, 언젠가 돌아올 마지막 이맘 마흐디, 거기에 어훈드의 어훈디까지, 굉장히 흠좀무한 이름이다. 말하자면 현직 메이저리거인 스탈린 카스트로 같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하긴 프랑스 5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샤를 드 골만 해도 풀네임이 Charles André Marie Joseph De Gaulle로, 예수 12제자, 성모 그리고 구약 네임드로 이뤄진 화려한 미들네임 라인업을 자랑한다. 동아시아 이외 지역의 작명 센스는 다들 비슷한 것 같다. 혹시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면 자식 이름은 Adam Smith Fritz Haber Margaret Thatcher-Hayek이라고 지어야겠다.


 이란에는 에르펀 외에도 기성 12이맘 시아파 종단 바깥에서 대안적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공동체들이 많이 있다. 아주머니 따라서 다른 코란 공부 모임에도 나가 본 적이 있다. 인도에서 종종 보이는, 요가와 마리화나를 즐기는 서양인 히피같이 생긴 젊은 남성이 주관하는 모임이었다. 코란 공부하면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같이 머리를 시계추마냥 앞뒤로 흔들며 주입식 암기하는 마드라사만 떠올렸던 필자로서는 매우 신선한 자리였다. 자유로운 난상토론이 오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코란 선생이 필자가 이란에서 사귄 사람 중 유일하게 우두(Wudu, وضوء, 종교의식 전에 몸을 씻는 것)와 하루 세 번의 나머즈(نماز, 기도)를 지키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특기할 필요가 있다. 나머즈는 수니파의 쌀라(صلاة)에 해당하는데, 시아파는 일 3회라는 점에서 수니파의 일 5회에 비해 널널함(?)에도 불구하고 나머즈를 지키는 사람을 좀체 못 봤다. 백화점 같은 공공장소에서 나머즈 시간마다 아잔이 울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오작동한 화재경보기 비슷한 취급을 하는 듯했다. 파키스탄에 있는 동안 아잔 소리 울리면 사람들이 칼같이 길바닥에서라도 기도하는 것을 목격한 필자로서는 의외의 광경이었다.


마슈하드의 한 히잡가게 간판. '이상적인 히잡'이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널널함은 히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슬람공화국에서 권장하는 '정석 히잡'은 위 사진과 같다. 세부 디자인은 차이가 있지만 검은색이며 머리쓰개가 상반신 일부 혹은 전신까지 덮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이란의 여성 국회의원들
이란의 여자 대학생들


 하지만 위와 같이 공식석상에서 '정규 히잡'이 강제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란 히잡의 주류는 밝은 색 루싸리로 머리만 가린 뒤 앞머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란 밖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데, 놀랍게도 한-이란 정상회담 당시 박근혜가 했던 히잡이 이와 일치한다. 외교부 당국자의 센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란 젊은 여성 히잡의 정석을 보여준 박근혜(출처 : 연합뉴스)

 

 이는 히잡이 강제되지만, 그렇다고 다에시처럼 여자들을 두들겨 패 가며 얼굴까지 가릴 것을 강제하지는 않는 이란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애초에 자발적으로 히잡을 착용하는 상황이라면 앞머리를 드러낼 이유가 없다. 눈가리고 아웅이기 때문이다. 히잡을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식 매운맛 세속주의(라이시떼)에 맞서야 하는 프랑스 무슬림들을 보자.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다들 앞머리를 가리고 있다. 반대로 이란의 경우는 억지로 하는 히잡이기 때문에 앞머리를 드러낸다든지 하는 식으로 변칙을 가하는 것이다.(아마 박근혜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교복을 줄이는 것과 비슷하다.

'가리든 안 가리든 우리는 평등을 원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프랑스 무슬림들 (출처 : BBC )


 필자의 이란 여사친들은 머리를 덮는다기보다는 정수리에 루싸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느낌으로 히잡을 한다. 수시로 흘러내림은 물론이다. 같이 길을 걷다가 '니 그러고 다니면 게슈테 에르샤드가 안 잡아감?'이라고 물어봤을 정도이다. 게슈테 에르샤드(گشت ارشاد)는 풍기를 문란케 한 여성들을 잡아가는 단속반 같은 기구로 이란 여성들 사이에서는 퍼테 코만도(فاطی کومندو)라고 곧잘 불린다. 사실 비무슬림 외간 남자가 히잡 대충 한 이란 여성과 둘이서 길을 걷는 상황 자체가 어그로가 엄청 끌리지 않을까 우려했었는데, 다행히도 이란에 있는 동안 딱히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숨막히는 이슬람원리주의를 기대하고 이란에 방문한다면 테헤란 행 항공기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크게 실망할 것이다. 우루무치 발 테헤란 행 중국남방항공 기내에서 히잡을 한 여성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내에서 옆자리에 앉은 하메단همدان 출신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비행기가 착륙하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서 머리에 두르는 것이었다. 필자가 '히잡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군요'라고 농을 건냈더니 그녀는 웃으면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사실 모호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모호하다는 뜻의 페르시아어 단어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던 다른 이란인 아주머니와도 친해졌다. 산둥성山东省 지난济南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에 그녀가 '지난'이라고 하는 것을 '지나'로 잘못 알아듣고 이 아주머니가 설마 '폭려지나(暴戻支那)'할 때 그 지나를 중국 국적기 안에서 대놓고 말하는 건가 하고 그녀의 패기에 기겁했었다. 지나支那(일본식으론 시나)란 중일전쟁 당시 일본이 중국에 대해 사용하던 멸칭으로, 하필 한어병음상 Zhīnà로 표기된다. 그녀가 산둥성의 성도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지난'을 말했던 것임을 알고 비로소 안도하게 되었다. 아래 사진은 중일전쟁 당시의 아사히신문 보도인데, 지나라는 단어가 대충 어떤 뉘앙스로 쓰였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본다.


우측 붉은 박스 안의 기사 표제에는 '육해 호응 포문을 열어 폭려지나에 맹공격'이라고 적혀 있다.


 히잡 관련해서 이란 여성들이 필자에게 보여주었던 다른 인상깊은 광경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2년 전 쯤 이란 대사관 주최 학생의 날 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행사가 끝나고 대사관 문을 나서자마자 수십 명의 여성들이 한번에 루싸리를 벗어던지는 광경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심지어 주한 이란 대사관 주최 노루즈(이란 새해) 행사에 갔을 때는 미니스커트에 루싸리라는 일견 기묘한 조합의 복장을 한 여성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이란 여성들은 마치 우리회사 공정구역에서 안전모를 착용하는 그런 감각으로 자국 대사관 주최 행사에서 히잡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 형법(Islamic Penal Code, قانون مجازات اسلامی) 제 638조 주석은 히잡을 하지 않은 여성을 10일에서 2달 이내의 구류(حبس, 대한민국 형법의 구류/금고/징역 중 정확히 어느 것에 대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혹은 50,000리알에서 500,000리알 이내의 벌금(엄밀히는 과료이겠지만)에 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현재 리알화 시장환율이 1달러 = 23만 리알 정도 되니까 이쯤 되면 벌금인지 단돈 2달러면 히잡 면제권을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아무래도 이란 입법부에서 인플레이션을 벌금 액수에 적절히 반영하는 것을 까먹었던 것 같다.


 저걸 과태료도 아니고 형벌을 때린다고?하실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다. 참고로 1989년 법률 제 4041호로 개정되기 전 우리나라 경범죄처벌법은 하기 행위를 구류 혹은 과료로 처벌했다.


(長髮(장발) 및 低俗衣裳(저속의상)) 남녀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긴머리를 함으로써 좋은 풍속을 해친 남자 또는 점잖지 못한 옷차림을 하거나 장식물을 달고 다님으로서 좋은 풍속을 해친 사람(구 경범죄처벌법 제1조 45호)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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