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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진 Jan 11. 2024

가부장제의 틀을 깨다, 새로운 가족의 형성

충북여성재단 2023 충북청년성평등네트워크지원사업

2023. 09. 07 최종 수정

충북여성재단 성평등 기자단 ‘나비단’

나은진 작가







‘아버지’ 없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대. 이게 무슨 소리냐, ‘레즈비언 부부’에서 ‘레즈비언 엄마’가 된 김규진, 김세연 부부와 ‘비혼 임신’으로 화제가 되었던 연예인 사유리의 이야기다. 아이 없는 부부 ‘딩크족’이 처음에는 특이 케이스 취급을 받았지만 최근 사회에서는 하나의 분류가 되었듯이, 이제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 없는 가족도 새로운 분류로 인정되어야 할 때다.



‘아버지’만 없나? 이제는 ‘부모’가 아닌 서로를 ‘보호자’로 받아들인 동반 가족도 있다. 친구를 입양해 피붙이 아닌 가족을 만들고, 서로 다른 40대 여성이 만나 반려묘와 함께 꾸린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가 유행인 요즘. ‘비혼’ 역시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최근 충청북도교육청은 도내 전체 학교 및 교육기관에서 사용되는 성차별 행정 용어를 순화하기 위해 대표 차별 행정 용어 10개를 선정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는 ‘미혼’이 ‘비혼’이라는 용어로 바뀐 것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게 아닌 하지 ‘않기로’ 결정한 자들의 의도를 법적으로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면 아비 없는 출산, 피가 섞이지 않는 동성 식구는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해주자면 아직은 ‘NO’다. 법적으로 인정하는 가족은 혼인 관계, 친자 관계, 친족 관계를 대상으로 한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가족이 생겨나고 있지만 사실상 법으로 인정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물론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단체 운동과 정치적 의견 피력은 예전부터 꾸준히 존재했다. 한때 뜨거운 감자였던 법률, 이름하야 ‘생활동반자법’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최초 2000년대 ‘동반자 등록법’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 운동에서부터 시작된 동반자 등록법은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첫 공약으로 나왔고, 정치권의 구체적 법 제도 마련을 위한 시도가 조금씩 이어졌다. 마침내 ‘동반자 등록법’이 ‘생활동반자법에 관한 법률’로 자리 잡았다.



‘생활동반자법’은 단순히 비혼, 동성애에 관한 정보만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삶의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 주 청년층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성격이 두드러졌고 이로 인해 결혼하지 않고 살겠다는 비혼층의 의견이 뚜렷해졌다.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이루어졌던 결혼이 오히려 경제적 부담을 주게 되었다는 점도 한몫할 것이다.



청년뿐만이 아닌 노인층의 이성 교제 및 사실혼도 근거가 될 수 있다. 일찍이 사별하였거나 홀로 사는 독거노인의 경우 황혼 재혼 또는 이성 교제를 희망하는데, 사회적 시선과 상속 갈등 등의 이유로 실제 재혼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사실혼 관계 역시 법률적 제약이 크기에, 이러한 차별과 소외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생활동반자법’과 같은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통 새로운 법을 발의하는 데에는 관련된 선행 연구와 사례가 존재하기 마련. 프랑스의  남녀(男女)가 아닌 성인 두 사람(deuxpersonnes) 사이의 결합에 대한 연대의무협약(PCAS), 비혼인 공동체를 인정하는 독일의 생활동반자법(Lebenspartnerschaften)이 대표적인 예시가 되겠다. 


비단 서양이 아닌 우리와 가까운 일본에서도 두 동성 간의 생활공동체를 법률상의 혼인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파트너십 증명제도’가 지자체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유교문화와 가부장제가 건실한 한국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과연 실현가능한 법제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반면 이미 현실로 다가온 논제라는 생각도 든다. 여전히 논쟁이 오가는 주제 속에서도 위 사례들과 같이 새로운 가족은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무려 2014년 초안이 마련되었으나 9년이 지난 2023년에서야 국회 문턱을 밟게 되었다고 하니, 여전히 보수단체의 반대가 열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동반자의 연금 수급부터 보험 피부양자, 출산 및 육아 휴가까지 보장을 요구하는 새로운 법안이 귀결된다면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은 확실하다. 








다만 ‘생활동반자법’이 가장 큰 반대에 부닥치는 이유는 ‘동성혼’까지 허용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단체는 아동 인권을 고려했을 때 동성혼과 혼외임신이 증가하는 등의 문제를 반대 사유로 꼽았는데, 유교 문화가 특히 발달한 한국에서 ‘생활동반자법’이 실현되기까지는 반대 세력의 주장을 잠재울 확실한 여론과 근거가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앞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여러 가정의 사례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에 발맞춰 나아가야 할 사회는 아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저 너머에 있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앞으로 다양한 가족을 형성할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합일된 주장을 외치는 수밖에. 멀고도 험난한 길이지만 이미 발걸음은 떼어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하나. 맞다, 직진뿐이다!





2023년 충북여성재단 충북 청년 성평등 네트워크 지원사업
성평등 기자단 '나비단' 기사집에 수록한 칼럼입니다.
기사집 PDF본은 본 링크에서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s://www.cbwf.re.kr/home/sub.php?menukey=596&mod=view&no=3991&scode=9999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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