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는 시즌 초반 부진하다. 7경기를 치르며 2번 이기고 2번 비기고 3번 패했다. 그동안 7골을 넣고 9골을 넣었다. 지난 시즌 3위를 차지했던 위세는 보이지 않는다. 숫자로는 아직 6위지만 최하위 수원FC와 차이는 불과 2점. 반면 선두 전북 현대와 차이는 9점으로 벌어졌다.
시즌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예상됐다. 팀의 공격을 책임졌던 일류첸코와 팔로세비치 외국인 듀오가 팀을 떠났다. 임대생으로 주장까지 맡았던 최영준 역시 원 소속 팀인 전북 현대로 돌아갔다. 원클럽맨 김광석은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하창래는 시즌 개막 직후 김천 상무 입대를 위해 팀을 떠났다. 지난 시즌 포항의 중앙을 지켰던 선수들이 사실상 이탈했다.
신진호, 신광훈을 비롯해 베테랑 선수들 여럿이 포항 유니폼을 다시 입었으나, 당장 지난해처럼 완성된 팀을 보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사실 김기동 감독 체제도 2019시즌 하반기에서 반전의 실마리를 잡은 뒤 2020시즌 제대로 비상했다. 김기동 감독은 지난달 31일 “초반 한 달에 고민이 많다”며 “그대로 데려 온 선수가 없다. 사실상 (선발 출전한) 대부분이 새로운 선수”라고 말했다.
선수 변화는 곧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공수 밸런스의 문제로 직결된다. 김 감독은 “수비가 불안하면 아무래도 공격수들이 뒤를 자꾸 신경쓰게 된다”고 말한다. 지난 시즌 포항은 27경기에서 56골을 터뜨리며 리그에서 가장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무게감이 공격에 실린 것은 사실이나 오롯이 공격수들의 활약 때문만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지난 시즌 일류첸코, 팔로세비치, 송민규, 팔라시오스, 강상우 등 공격적인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허리와 뒷문이 든든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때문에 하창래 이탈을 시즌 초반 가장 큰 악재로 꼽힌다. 다른 선수들은 일찌감치 떠난 편이지만, 하창래는 동계 훈련에 이어 개막까진 팀에서 함께 뛰었다. 그의 이탈은 다른 선수들의 이적보다 새삼 크게 다가온다.
현재 김광석-하창래 듀오의 공백은 권완규-전민광으로 메우고 있다. 문제는 작은 실수들이 경기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권완규의 경우 원래 측면 수비수로 활약했던 선수고, 전민광 역시 중앙에서는 주전 자리를 잡지 못해 지난 시즌엔 오른쪽 측면 수비로 자주 나왔다. 아무래도 전임자들에 비해 무게감이나 개인 역량에선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김 감독은 “실점을 보면 상대가 잘한 것보다, 우리가 실수를 하면서 내주는 것이 많다”며 수비진 불안을 고전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짚었다.
당장 수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 안정적으로 밸런스를 잡았던 지난 시즌과 비교해, 공격 지향적 전술이 공격-수비 모두에서 어려움만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5라운드 수원 삼성전에서 수비 실수로 초반 실점한 뒤 다소 무리한 공격으로 역습을 내주며 무너진 바 있다.
다만 이 문제를 그저 ‘지적’ 혹은 ‘불만’에 그칠 김 감독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강점은 ‘실용주의’에 있다. 압박에 부담감을 느끼는 이승모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해 실수에 대한 부담은 덜고, 뛰어난 활동량은 살리는 것이 대표적으로 김 감독의 문제 해결 방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감독상 수상 직후 “아무리 좋은 전술이 있어도 선수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정적인 선수단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우선 실수를 저지른 수비수들을 다그칠 필요는 전혀 없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하루아침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혼을 내봐야 자신감만 떨어진다. 대신 팀의 조직으로 개인의 실수를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것이 김 감독의 복안이다.
이를 위해 김 감독은 아주 공격적인 팀의 무게중심을 약간 뒤로 옮길 계획이다. 지난 시즌보단 다소 수비적으로 물러서더라도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려는 것이다. 그저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다. 수비의 불안은 감추면서도, 포항의 장점인 공격력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균형을 찾고 나면 선수들의 심리적인 면 역시 해결될 수 있다. ‘왜 지난해처럼 공격적으로 안 될까?’라는 조급증에, 올해는 선수단 변화에 맡게 전술 콘셉트가 바뀌었다는 해답을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루 이틀에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즌을 치러가며 그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김 감독은 “여름이 지나면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힘이 되어 줄 선수들은 새로 영입된 외국인 선수들인 타쉬와 크베시치다. 두 선수는 직접적으론 일류첸코와 팔로세비치의 자리를 대신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부품을 바꿔 끼우듯 두 선수를 그대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포항의 현 상황에 맡게 ‘녹아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김 감독이 말한 ‘약속의 여름’엔 두 외국인 선수의 적응이 포함돼 있다.
좋은 선수들이 모여 있으면 좋은 성적을 낸다. 하지만 좋은 사령탑이 있으면 항상 좋은 팀을 꾸릴 수 있다. 지난 시즌 3위를 차지하고도 K리그1 감독상을 받은 것은 김 감독이 보여준 역량에 대한 인정이다. 올 시즌 포항의 초반은 분명 부진하나, 김 감독의 예상 범위 내에 있으며 문제점도 인식하고 있다. 다만 해결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포항 팬은 그 ‘약속의 여름’을 기다리고 있을 터. 아마도 올 봄은 포항에 정답을 찾아내기 위한 ‘오답노트’가 될 것이다.
글=유현태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포항스틸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