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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Mar 05. 2024

완전무결한 결백의 내막

[연극] 컬렉션 : 극작 - 헤롤드 핀터 / 연출 : 변유정

컬렉션 (2023)


2010년 타진요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과거에 타블로라는 가수에게 학력위조가 아니냐는 의심으로 시작한 사건은 수많은 다수의 사람을 현혹시키고, 진실을 요구한다며 강제적인 협박을 일삼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현대판 마녀 재판이었다. 많은 이들은 타블로가 증거를 가지고 나오고, 진실을 말해도 눈을 감은채 보기를 거부했다. 진실이 아니라 타블로의 거짓말이 진실인 것 마냥 몰아갔다. 과연 그들은 진실을 보기를 원한 것인가? 아니면 진실보다 자극적인 순간을 집착한 것인지 모른다. 사건이 끝난 이제는 정확히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타진요라고 부르는 사건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일종의 현상은 아니었을까 다시 생각해 본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모순을 보면서 나는 해롤드 핀터의 연극 ‘컬렉션’을 떠올린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불륜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4명의 진실공방. 하지만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일어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진실에 대한 집착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만 집착한다. 나 또한 연극을 보는 내내 그래서 불륜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집착했던 것 같다. 그래서 불륜사건이 일어난 것인가? 호텔에서 그날 밤 엇갈린 진술은 무엇인가라며 연극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잊어버린 채 연극을 관람했다. 그래서일까 연극이 결말에 다가서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사건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이질적인 결과에 한동안 생각을 멈추고 무대를 감상했다. 


그러면서 나는 잠시 연극의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카프카의 소설을 떠올렸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에서 주인공 ‘K’는 원인 모를 소송에 휘말려 끝없이 법정을 오고 가며 반복된 사건을 겪는다. 결코 밝혀지지 않는 진실의 굴레를 찾아 끝없이 그는 발버둥 친다. 그러나 진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그를 괴롭힌다. 무엇이 그에게 옳은 진실인지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피의자와 피해자로 바뀌어버린 마녀사냥을 되풀이할 뿐 변하는 것은 진실의 주종관계가 전부였다. 이와 동일시하게도 연극도 주인공이 정해둔 진실의 척도를 기준으로 기계적인 해석을 되풀이한다. 

  

관객은 진실이라는 것에 대한 집착이 많았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종결점이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점차 불륜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과 결과를 두고 엇갈린 대화만을 지속했다. 서로 다른 두 커플의 만남은 처음에는 사실에서 두 번째는 거짓으로 변한다. 사건은 지평선의 끝자락처럼 끝이 없는 반복이 진행된다. 이렇게 이어지고, 흩어지는 것을 반복했을 때 연극은 무엇을 관객에게 보여주려고 했을까? 진실에 대한 허무한 영역을 선보이고 싶었을까? 사람과의 엇갈린 관계 속에서 의미 없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연극은 무엇 하나 정확하지 않고, 의미가 나타나지 않았다. 무대에서 카프카의 법정에 서있는 인물 'K'처럼 영원한 굴레에 속박되어 있는 기분으로 연극이 끝난 것에 매우 미묘한 기분으로 극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앞서 말한 타진요 사건도 연극의 불륜과 다른 바가 없었다. 각자만의 사실을 언급하며 그들은 사건을 몰아붙인다. 우리는 모두 정답이라는 전제로 두고 타진요 사건을 해부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모두 무엇이었을까? 각자만의 다른 해석으로 시작했지만 결론은 모두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지금에서는 타진요 사건은 잊혔다. 그러나 여전히 개인적인 해석을 품고 사건을 짐작하는 사람들은 남아있다. 그들은 사건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그건 연극도 동일하게 흘러간다. 모호하게 드러난 문제를 두고 진실을 집착하는 현대인을 해부하고 싶은 부조리한 구조의 대칭점 같다. 

  

그러나 연극의 모호한 부조리와 별개로 중요한 지점이 있다. 바로 사건의 결과를 정해둔 마녀사냥과 여론에 의한 분노는 사회를 좀먹는 해악이라는 점이다. 어떠한 사건도 이러한 지점을 달갑게 여겨지어서는 안 된다. 매 순간 그렇게 끝나버린 결과에 의존한다면 도파민 중독처럼 그들의 욕망이 지속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진실이 중요하지만 해부된 진실 혹은 결과론적인 의존으로 사회적인 분노를 표출하고자 꺼내온 진실은 결코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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