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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an 25. 2024

호주, '레고' 마니아들의 축제는 이렇다.

레고 한 조각이 예술로 거듭나는 과정은?

지난 주말, 레고 마니아들을 위한 컨벤션 (Brickvention)에 다녀왔다. 멜번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칼튼 왕립 전시관(Royal Exhibition Building Carlton)의 고풍스러운 입구를 지나니 곧바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전국 각지의 레고 마니아들이 자신들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고 팬들과 대화하며 여러 상품들을 판매하고 교환하기도 하는 장이 열린 것이었다.

수많은 작품과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들로 전시장은 붐볐다.

작가의 취향에 따라 수천수만 개의 레고조각들은 2D, 3D 작품으로 거듭났다.  총천연색 칼라 작품이 있었고 무채색 모노 칼라의 작품도 있었다.

얼마나 큰 작업실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작업을 했을까 싶은 거대한 작품도 있고 바짝 다가가 뜯어봐야 하는 오밀조밀 귀여운 작품도 있었다.

세계의 랜드마크를 한자리에서 만났고 창의적 해석이 놀라운 다양한 체스판도 있었다.

멜번 도시 전체를 정교하게 축소해 담은 작품도 있었고 수십 가지 기차 모델이 대기한 기차역도 있었다.


건반이 움직이는 피아노가 있고 종일토록 쵸코볼을 나르는 컨베이어도 있었다. 

실물을 확대한 재봉틀. 어떤 청년은 스니커즈를 만들었고 어떤 여인은 하이힐을 만들었다. 

손톱만 한 작고 납작한 플라스틱 조각으로 쌓아 올린 별별 세상이 너무 흥미로웠다. 어린 소년부터 백발의 할머니까지 그 조각에 매료된 마니아들은 세월이 흘러도 그 놀이에서 빠져나오지를 않는 듯하다.   

아마추어 레고 작가들이 출연하여 주제에 맞는 작품을 만들며 경쟁하는 TV 리얼리티쇼 '레고 마스터스'는 여러 시리즈를 해마다 거듭하며 수준을 높여간다. 때로는 부부가 때로는 할머니와 손자가 팀을 이뤄 등장한다.세계가 인정하는 마스터즈 칭호를 얻기 위한 이들의 경쟁은 치열하기만 하다.  이 쇼에 출연했던 작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는데, 이들은 스타처럼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쪽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조명을 들이대며 조각조각을 뜯어보는 관람객도 있고 카메라와 비디오를 대동해 촬영에 집중하는 이들도 있다.

작가들의 창의력 집중력 자금력에 감탄했다. 레고 상품은 한 박스에 1-2만 원부터 시작해서 수십 수백만 원을 부르기도 하는데 희귀 한정판은 부르는 게 값이다. 도대체 누가 왜 그 가격을 지불하려 하는지는 묻지 마라. 거대한 작품들은 작가의 이름을 떠나 레고조각 가격 자체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래도 좋다고 미쳐서 골방에 틀어박혀 돈과 시간과 열정을 죄다 쏟아붓는 마니아들의 축제에 나도 티켓 한 장 사들고 들어와 동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세상이 디지털과 온라인으로 빠르게 뒤바뀌어 가도 손끝으로 딱딱한 촉감을 느끼며 한 조각 한 조각 쌓아 올려가는 그들의 노고와 집념을 응원했다.

관람을 마티고 나오니 칼튼 전시장 앞 여름 정원이 시원했다. 아름다운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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