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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Nov 06. 2023

호주, 달리기 동호회에서 생긴 일.

달리면서 바라본 인생 풍경

지난 토요일 아침 8시 이웃마을 로즈버드에서 달리기를 했다. 주말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5킬로를 달리는 동호회인데 일찍이 가입을 했음에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처음으로 남편을 따라나선 것이다. 이 날 달리면서 보았던 풍경들, 했던 생각들을 몇 가지 나눠보겠다.

초여름에 접어든 11월의 아침 날씨는 맑고 선선해서 달리기를 하기에 딱 좋았다. 200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모여 스트레칭을 하며 달릴 준비를 하고 있어 놀랐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온 거지? 나이도 성별도 옷차림도 다양하지만 모두들 부지런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Park Run이란 단체는 동네마다 작은 지부를 두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이 되는데, 마을 사람들이 근처 공원에서 함께 뛰도록 모임을 정기적으로 주선한다. 참가자의 기록과 순위, 참가 횟수까지 꼼꼼하게 온라인으로 관리해 주니 혼자 뛰는 것보다 동기부여도 될 것이다.

주관자가 2.5킬로 바닷가 산책길을 두 번 도는 코스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처음 온 사람들을 박수로 환영한 뒤 모두들 출발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뛰는 사람, 걷는 사람, 유모차를 미는 사람, 개와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뒤섞여 자기 페이스대로 코스를 달려 나갔다. 아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반가웠지만 간단하게 눈인사만 하고 서로 지나친다. 그는 어린 딸과 뛰는 중이었다. 주말이니 일을 할 이유가 없고 학교가 아니니 선생님이 아니고 아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중이니 괜히 사사로운 안부를 물으며 그의 귀한 시간을 축내어서는 안 된다. 예전엔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도 지나친다는 게 불편하거나 섭섭했는데, 이젠 그것이 서로의 사생활을 적절히 보호해 주는 기본 매너라는 것에 동의한다.

속도를 조절해 나가며 앞에서 뛰는 사람들의 등판을 바라보았다. 

중년여인의 붉은 셔츠 뒤엔 숫자 50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오십이 별거냐?로 해석했다.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걷는 백발노인의 등엔 100이 적혀 있었다. 백세를 향하여! 이런 의지를 다지는 것이겠지. 어느 청년의 회색 등판엔 Don't be last! 꼴찌는 되지 말라!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주워 담으며 나도 열심히 걷다 뛰다 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았다.


어느 엄마는 유모차에 아이를 둘이나 태우고 뛰었다. 어느 여인은 시각 장애인 조끼를 입고 뛰었는데 그 옆엔 동행 보호자 조끼를 입은 이가 나란히 뛰며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아기를 등에 업고 뛰는 아빠도 있고 아이를 이고 지고 다 같이 뛰는 가족들도 드물지 않게 있었다. 어느 엄마가 세 살쯤 되는 딸아이에게 힘주어 말했다.

"딸아. 너는 안아달라고 칭얼대지도 않고 네 힘으로 한 바퀴를 걸었어. 정말 대단해. 난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너도 너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껴야 돼. 이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 그녀의 말에 속으로 동감했다. 


마침내 5킬로를 완주했다. 주최 측에서 시간과 등수를 알려줬다. 188등, 중하위권인가. 좀 전 그 엄마에게서 들었던 그 말을 나 자신에게도 해주었다. "아침잠 많은데, 이불 박차고 나온 거 칭찬해. 몇 달 동안 미루다가 마침내 시작한 거 대단해."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내 마음도 파랬다.




우리에겐 두 명의 일행이 있었다. 남아공에서 이민 온 지 얼마 안 된 20대 구직자 청년과 건축 디자인을 하다 은퇴한 70대 스코틀랜드 아저씨. 싱가포르 남편과 나는 50대. 보통은 동네 모퉁이의 지인 카페에 가서 모닝커피를 한잔씩 마셨다는데 오늘은 젊은 청년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 해서 가까운 맥도널드에 자리를 잡았다. 나이도 성별도 출신국도 생애주기도 다른 우리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시작은 동네의 맛있는 피자집이 어디인가? 였다.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주인이 바뀌었고...

-염장 멸치 토핑을 좋아하는가? 멸치를 모르는 청년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피자집 새 주인이 인도인인데 별별 토핑을 얹어 이상하다. 퓨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청년과 이탈리아에서 소스와 치즈만 얹은 전통 피자를 먹어보고 놀랐다는 70대. 그 둘에게 맞장구 쳐주며 피자 이야기를 마무리하다가 인도 이야기로 빠져든다. 

-인도 이민자 숫자가 중국 영국을 누르고 호주에서 1등을 차지한 이야기, 피지 섬에 인도인이 너무 많고 정치인도 많아 인도 출신 국회의원 수를 법적으로 제한했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다음 주에 남호주 마운트 갬비어로 아내와 여행을 떠난다는 70대의 이야기에 5년 전 그곳으로 캠핑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며 아직도 호주가 낯선 청년에게 이런저런 여행지를 추천하다 보니 헤이즐넛 냉커피 한잔을 다 마셨다. (나는 차갑고 단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 사적이거나 무겁지 않은 재미있고 유익하기도 한 스몰토크를 나누다 보니 미디어에서 떠드는 여러 갈등과 간극은 우리 사이에 느껴지지 않았다.  


내일 교회에서 보자며 활기차게 작별하고 시계를 보니 이제 아침 10시다. 너무도 싱그럽고 활기찬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의 달리기 인생도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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