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애샌보로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데이빗 애센보로(David Attenborough)를 아는가? 영국 출신의 세계적 생태학자이자 유명한 작가이며 방송인이다. 동식물등 자연의 생태와 자연사를 다루는 수백 편의 그의 다큐는 지난 반세기 이상 세계 각국에서 열렬한 인기를 끌었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경이란 작위를 부여받은 그는 셰익스피어나 비틀스와 동급의 영국 출신 유명인사로 꼽힌다. 98세의 노학자는 지금도 현역에서 왕성히 활동하는데 BBC와 합작해 새로 편집한 다큐 '지구 체험(Earth Experience)'을 멜번 시내 컨벤션 센터에서 상영한다길래 관람을 하러 갔다.
멜번 컨벤션 센터는 한국의 코엑스쯤 되는 전시 컨벤션 위주의 공간이다. 초대형 스크린이 여러 각도로 늘어서 한 주제를 여러 시각으로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동물의 세계'쯤에 해당하는 지루한 동물 다큐가 뭐 그리 재밌다고 이런 대형 극장에서 상영을 하는가 싶겠지만 5만 원(일반 영화의 2-3배 가격)이 넘는 입장권은 매회가 매진이다. 그의 다큐는 멜번 아트센터(한국의 예술의 전당쯤)에서 오케스트라의 협연에 맞추어 상영되기도 할 만큼 고급 예술로 대접받는다.
탁월한 영상미와 경륜 있는 노학자의 잔잔하고 깊이 있는 내레이션이 딱 떨어진다. 도대체 저런 장면은 어떻게 포착한 걸까? 얼마나 오랜 시간 카메라를 들고 대기를 한 거지?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남극에서 아마존, 각 대륙의 땅 위나 밑, 물속 하늘에서 날뛰고 펄떡이는 존재들이 화면 가득 주인공으로 등장했다가 이내 사라진다. 일단은 엄청난 물량의 시각적 청각적 자극과 정보와 지식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대략 예약한 세션에 입장을 하지만 70분간 이어지는 다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하루 종일 상영된다. 남녀노소 가족끼리 연인끼리 편안하게 들어와서 빈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거나 누워 자유롭게 관람하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색다르다. 이들은 나름대로 지구와 자연환경에 관심이 많은 이들일 것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구촌 곳곳의 자연이 너무도 아름다워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큰 감동은 노학자의 진지한 성찰을 따라가며 결국은 그들과 다를 게 없는 나의 삶, 인간사, 세상만사를 관조하게 된다는 것일 게다. 생로병사, 희로애락, 투쟁과 성취, 좌절과 희망.. 우리네 인생과 똑 닮은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때로는 측은함과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릿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스러움에 마음이 녹아내리기도 하면서 화면 속 생명체의 매력에 푹 빠져든다.
그래서인지 이 다큐 한편을 다 보고 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잔잔해지고 펄떡이던 가슴이 평온해지며 피곤했던 육신마저도 가벼워졌다. 두 다리 뻗고 콩자루에 기대 누워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잘 쉬고 에너지를 다시 충전한 기분이 들었다. 풀 한 포기 없는 차가운 스크린 앞이었지만 온 세계를 돌며 자연을 헤치고 여행을 다녀온 듯 뿌듯하고 즐거웠다.
그의 다큐는 넷플릭스에도 유튜브에도 많이 있으니 한 번쯤 찾아보기를 권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 지구와 온 우주에도 관심을 갖고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