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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Oct 18. 2024

호주, '채식주의자'를 포용하는 문화는?

한강 작가의 책을 읽다가..

한강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이름만 알고 기사로만 그녀의 수상 소식을 듣고는 했는데, 노벨 문학상을 탔다니 이제는 정말로 읽어야겠구나란 생각이 든 것이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감동을 받아 곧이어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내가 그동안 살면서 느껴왔던 불편함과 분노에 대해 정확하게 자각했다. 견고하면서도 무지한 사회적 혹은 가정 안의 폭력 앞에 무기력해지는 연약한 존재를 보면서 오랫동안 짐 져오던 문제들의 본질을 보게 된 것이다. 그 큰 주제를 작가가 조용히 예리하게 끄집어내어 잘 다독여 써놓아 놀라움과 후련함을 느꼈다.


이래서 한 문학작가를 보고 그 사회의 수준을 가늠한다고 하는 것일까? 한강 작가가 제기한 폭력 문제들에 대해 사회 전체가 반응을 하며 그동안 인식하지 않고 지나치던 문제들을 온 국민이 직시하고 고민하고 연구하게 되니 말이다. 어떤 이슈들을 문제로 바라볼 줄 아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오래전 썼던(2009년) 채식주의에 관한 글이 생각나 다시 정리해 본다. 



얼마 전 한 독일 여인의 한국문화 비판서가 논란을 일으켰다.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상에서 격론을 일으켰던 몇몇 사례들을 나름대로 생각해 봤다. 책 내용 중 채식주의자인 독일녀가 비빔밥을 주문하며 고기를 빼 달라고 매번 요구하는데 종종 들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다. 동서양 문화의 간극을 짧은 시간 안에 좁히지는 못하더라도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 필요는 있겠다. 그래서 내가 체험한 호주인들의 ‘채식주의를 둘러싼 문화’에 대해 짚어볼까 한다. 


사실 호주에 처음 와서(1998년) 나를 놀라게 한 것 중 하나가 ‘채식주의자’들이었다. 호주땅을 딛자마자 환경 자원봉사 단체에 등록해 몇 달간 일을 했는데, 전 세계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10여 명씩 팀을 이뤄 호주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캠핑을 하며 환경과 관련된 격한 막노동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호주인 리더를 중심으로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저녁을 준비하는 게 고된 하루의 마지막 일과였다. 요리 경험이 미숙하고 문화도 다른 젊은이들이 제한된 캠핑 도구와 재료로 무언가를 해 먹는다는 일이 간단치 않았는데, 이 과정을 더욱 꼬아대는 이들이 채식주의자들이었다. 


가령 식사 당번이 고심 끝에 ‘닭가슴살을 넣은 카레라이스’를 하겠다고 하면 한 두 명이 손을 들고 자기 분량만큼은 고기를 빼고 해달라고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전혀 미안해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는 뭐는 먹고 뭐는 먹지 않는다며 주절주절 설명했다. ‘저 인간 사회생활 안 해봤나? 코펠 두 개밖에 없는 거 안 보이나? 하나는 밥을 하고 하나는 카레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며 부르르 떠는데, 나머지 팀원들은 (주로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독일 벨기에 덴마크 등등의 서방국 그리고 일본인들) 군소리 않고 어떻게 1인분을 따로 요리할지 의논한다. 누군가가 다 찌그러진 냄비 하나를 어디선가 찾아낸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불이 두 개밖에 없어서 3개의 냄비를 이거 올렸다 저거 올렸다 하면서 가까스로 동시에 요리를 끝마치면 채식주의자는 별다른 고마움 없이 자기 몫을 당연한 듯 챙겨 먹고 끝이었다. 


일주일 단위로 팀원들이 바뀌었는데, 그때마다 1-2명은 꼭 채식주의자였다. 종류도 다양해서 붉은 고기만 안 먹는 이들도 있고, 생선에 계란까지 가리기도 하고… 가끔  멀쩡하게 생긴 덩치 큰 남자가 이런저런 것을 가릴 땐 ‘확실한 식습관 개선’을 위해 한국 군대로 연수를 다녀오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다. 


20년을 넘게 호주에 살면서 너무도 다양한 국적과 민족, 개인의 별별 식습관을 경험한 뒤 나는 모든 이들의 식성과 취향에 토를 달지 않게 되었다. 그들 뒤에 얼마나 많은 역사와 사연이 있는지를 알게 된 거다. 

가령, 2주 전엔가 한 친구 가족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자며 주말을 보내게 되었다. 저녁과 아침을 같이 먹기로 했다. 금요일쯤, 그녀가 전화를 해서 내일 저녁 메뉴를 묻는다. ‘원래 가리는 게 없었는데, 첫아이 임신 때 입덧을 심한 게 한 뒤부터 체질이 바뀌어 몇 가지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는 거였다. 그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의논 한 뒤, 간단하게 카레라이스로 저녁을 먹었다. (손님 접대를 늘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한 땐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열심히 요리했는데, 현재는 재료를 구하기도 마땅치 않아 되는대로 하고 또 이곳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는 대화나 사교를 중시하는지라 음식 준비에 체력을 덜 소비하는 편이다.^^) 그녀는 밀가루 음식을 먹지 못해 다음 날 아침에 자신이 먹을 글루틴 없이 구운 빵도 따로 싸가지고 왔다. 


한 번은 여러 명을 초대해서 멕시칸 요리 ‘파지타’를 했는데, 손님 아이중 한 명이 무슨 이유론가 먹을 수가 없다 해서 부랴부랴 밥을 지은 적도 있다. 땅콩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가 실수로 그걸 먹고 죽었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땅콩 한알이 사람을 죽인다고? 땅콩이 지나간 식도 혹은 기도가 부어 호흡곤란으로 질식사한다는 거다. 이런 이들은 과자 한쪽을 먹어도 땅콩이 박혔는지 혹은 땅콩기름이 한 방울이라도 섞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주변을 보면 알레르기나 천식 등 고질병을 앓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살면서 왜 이런 병을 달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내 생각엔 가공식품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자기 몸이 안 받는 걸 어쩌겠는가. 먹을 때마다 사정을 얘기해야 하는 이들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호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는 교실 입구에 알레르기 문제가 있는 학생들의 개인 사항을 일일이 공개적으로 게시해 놓는다. 안전을 위해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이 문제를 인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유만 놓고 봐도 그렇다. 저지방 우유만 마시는 이가 있고 고칼슘 우유만 찾는 이가 있다. 무슨무슨 이유로 우유는 절대 입에 안 대고 식물성 두유만 먹는 이가 있고, 평생 염소 우유만 먹었다는 중년의 그리스 남자도 봤다. 이 남자는 항상 자기가 마실 우유를 직접 챙겨 가지고 다녔다. 젖먹이를 위해 엄마가 우유병 챙기는 것처럼. 


난 악어 고기(살짝 데친 오징어 맛이 낫던 걸로 기억한다.)도 먹을 만큼 가리는 게 없는데, 가끔 피자 집(가장 싸고 흔한 외식 요리)에 가서 따로 요구를 할 때가 있다. 수퍼 스프림을 시키면서 염장 멸치(너무 짜다.)를 토핑에서 빼 달라고 하기도 하고, 한판을 시키면서 반은 하와이안 토핑을 나머지 반은 해산물 토핑을 얹어 달라고 한다. (그야말로 중국집 가서 반은 짜장면, 반은 짬뽕을 달라고 하는 격^^) 호주에서 흔하게 할 수 있는 주문 방식이고 지금까지 내 요구를 무시한 피자 가게는 없었다.  


난 캥거루 고기(말 안 하면 소고기로 알고 먹을 수도 있다.)도 먹을 만큼 식성이 좋은데, 수년 전부터 카페인을 조절하게 됐다. 밤에 잠을 설쳐, 오후 3시 이후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근데, 호주 사람들은 수시로 커피나 홍차를 마시는 데다, 카페가 아닌 그들 집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아 내 취향대로 주문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뭔가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올 때, 그냥 뜨거운 물 한잔을 달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민트나 허브티를 구비해 놓고 권하기도 해 그걸 마시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녹차는 잘 잘 수 있다고 잘못된 정보를 전하며 권하기도 하고 커피에 우유를 많이 타면 어떨까, 홍차를 살짝만 우려내겠다는 둥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데(주로 친절한 한국인들이..), 그 마음은 알겠지만 도움이 되기보다는 피곤할 때가 더 많다. 심할 때는 하루에도 2-3번씩 몇 년째 똑같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내가 왜 카페인을 조절하는지, 어떤 차에 얼만큼의 카페인이 들어있으며 내가 얼만큼 그것에 반응하는지를 반복해서 설명하는 고충을. 


호주에서는 수십 명이건 수백 명이건 규모와 상관없이 컨퍼런스나 수련회에 가보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가 항상 따로 마련되어 있다. 동네 사람들끼리 모이는 간단한 바베큐에도 채식주의자용 부침개를 주최 측이 따로 요리하는 경우가 많고 혹은 채식주의자들이 알아서 자기가 먹을 것을 챙겨 와 직접 주최 측 불판에 구워 먹기도 한다. 저녁 초대를 한 뒤 혹시 가리는 음식이 있는지 손님들에게 미리 묻는 정도는 기본 매너이다. 세계의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채식주의자 혹은 이슬람교도 등등을 위해 따로 주문받고 미리 기내식을 준비해 둔다. 


10여 년 전 한국에 있을 때, 서울 중심가의 어느 카페에 갔다. 딸기주스 5천 원, 키위주스 5천 원 등등 생과일을 갈아 판다길래 딸기와 키위를 반반씩 넣어 갈아달랬더니, 메뉴판에 없다는 이유로 대답이 ‘노우’였다. 그래서 그냥 딸기주스를 주문해 마시면서 내내 생각했다. 믹서기 두대 놓고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곳이 아니었다. 멀쩡한 주방에 그럴듯한 인테리어가 있고 제값 다 받고 장사하는 카페였다. 과일을 두배로 넣어달라 하지 않았고 손님이 많아 바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나의 요구를 거절했을까…그 뒤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난 뒤끝이 있는 사람인가 보다.^^.) 


그 독일녀가 갈비탕이나 불고기를 주문하면서 고기를 빼 달라했다면 주방장의 권한으로 주문 자체를 거절하고 메뉴를 바꿀 것을 제안할 수 있겠다. 하지만 비빔밥 토핑(?)으로 얹는 볶은 고기나 계란 후라이를 빼 달라는 정도는 충분히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주방장이 더 맛있으라고, 푸짐하게 준답시고, 뭘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이 요리엔 고기가 들어가야 제맛이라는 걸 가르쳐 주려고 주문 사항을 무시한 건 아닐까? 주방장이 언어적 소통 문제로 이해를 못 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독일녀는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었고, 같이 간 한국 친구를 통해 언어적 문제를 해결했을 수도 있는데, 요구가 들어지지 않았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다. 


기독교 사상이 저변에 깔린 서방세계에서는 창조자가 개개인을 제각각으로 다르게 만들었다고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개성도 입맛도 생각도 다 다른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모난 돌’ 취급하며 정으로 내려 찍으려 들면 안 된다.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오늘 한 끼 무얼 먹을까의 고민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건강과 생명이 오가는 치열한 선택일 수가 있고, 목숨을 걸고 싶을 만큼 절박한 종교나 사상 철학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제삼자가 섣불리 나설 일이 절대 아니다. (2009/9/7 씀)       

요즘은 한국도 다양한 **식 주의자들이 등장하는 듯하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선택을 존중받으며 즐겁게 먹고 행복 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https://brunch.co.kr/@dreamdangee/159#comments


이 글을 썼을 때만 해도 '채식 존중'을 문화적 차이, 다양성 이슈로만 생각했는데, 이것이 폭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한강의 작품을 통해서 배웠고 깊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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