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 맘을 보며 했던 생각들.
장안의 화제라던 제이미 맘의 유튜브를 재미있게 보았다. 청담동 맘 혹은 요즘 엄마들의 과잉 육아나 교육에 대한 웃픈 에피소드를 보다가 오래전 추억이 문득 떠올라 나눠볼까 한다. 나도 10여 년 전 호주 시골에서 아들을 키우며 생일 파티를 하다가 제이미 맘처럼 마술사를 초대한 적이 있었다.
깡촌에 있던 학교라 전교생이 80여 명에 불과했고 모두가 한 어린이집, 한 유치원을 다니며 같이 성장했던지라 엄마들끼리 아이들끼리 참으로 가깝게 지냈었다. 학원도 맥도널드도 키즈카페도 없던 무공해 동네였는데 방과 후엔 서로의 집을 번갈아 다니며 노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니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엄마들이 친구들을 몽땅 불러 파티를 크게 여는 것이 중요한 이벤트였을게다.
호주 스타일의 성대함이란 무엇일까? 그들이 파티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내가 겪어 본 바로는 이랬다.
감사하게도 아들과 생일이 가까운 다른 3명의 친구들이 있어서 연합으로 수월하게 파티를 열었었다. 마을 한 복판에 있는 소박한 교회홀을 빌리고 반 친구들이며 형제자매들까지 부르면 5-60명은 기본으로 모였었다. 해마다 테마를 정했다. 어떤 해는 코스튬 파티를 해서 아이들이 캐릭터 옷(빌려 입고 돌려 입는)을 입고 나타났고 어떤 해는 동네 할머니께서 분장을 하고 나타나 마술을 보이고 코미디 쇼를 했다. 아이들은 간단한 풍선 마술에도 넋이 빠져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명 사립고 교감으로 은퇴하신 분이 짝짝이 양말을 신고 나타나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자연스럽게 펼칠 때 정말 놀랐었다. 체통을 집어던지셨구나! 동네 꼬마들 웃기자고 엄청난 재능 기부를 하신 거였다. 엄마들과 힘을 모아 감사의 뜻으로 일만 원 상당의 초콜릿 한 박스를 드렸다. ^^
아들이 1학년이었을 때는 4학년 6학년쯤 되는 친구의 누나들이 오락부장을 맡아 게임을 진행했다. 며칠 전부터 어떤 게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물이 필요하면 직접 만들고 상품도 마련하며 골머리를 굴린 뒤, 당일이 되면 목이 터져라 아이들 줄도 세우고 싸움도 말리며 열일을 했다. 누나들도 학원을 안 가니 방과 후에 몰려다니며 이런 기획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워킹맘이라 바빴지만 아이들 생일이면 꼭 하는 일이 생일 케잌 만들기였다. 아이들에게 원하는 케잌이 무엇인지를 물은 뒤 그것을 만들어 내느라 엄마들은 고민을 했다. 나도 낯설었지만 도서관에서 케잌 만들기 책을 대여해 와 연구를 거듭하며 만들었다. 유튜브도 없고 인터넷도 느린 시대였다. 어떤 해는 기차를 어떤 해는 공룡을 또 어떤 해는 기다란 10개의 젤리 다리가 붙은 오징어 케잌을 만들었다. 디자인과 색상까지 내 아이의 취향과 주문을 고려했다. 다른 엄마들도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재료도 나누며 세상에 하나뿐인 케잌을 정성스레 구웠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여러 가지 놀거리 먹거리들을 마련해야 했다. 4개의 테이블을 하나씩 맡아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옆집 엄마가 컵케잌 아이싱 장식하기를 하면 나는 옆테이블에서 미니 김밥 만들기를 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체험을 했고 맛있게 먹었다. 어떤 집은 색칠하기, 만들기 재료를 갖고 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이 많은 아이들과 반나절 흥청망청 잘 놀고먹는데 들었던 비용은 10만 원 안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4집이 갹출한 것도 이유였겠고 모든 걸 수제로 가족들이 직접 나서 요리하고 프로그램도 준비하니 돈이 나갈 데가 별로 없었다.
파티가 끝나면 아이들도 엄마들도 집에 돌아와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져 자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은 누구 집 뒷마당에서 모닥불 피우고 고기와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었고 누구 집 농장에서 양털을 깎는다고 하면 또 그걸 보자고 다 같이 몰려갔었다. 낮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고 보름달이 뜨던 어느 밤이면 아이들을 깨워 망원경을 들고 밤길을 헤매며 별을 관찰하기도 했었다. 내가 만났던 호주 엄마들에게 육아란 교육이란 이런 것들이었다.
학원도 선행교육도 경쟁도 없던 곳에서 한심하리 만치 생각 없이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서 대학생도 되고 직업훈련도 받는 건강한 청년들이 되어 저마다의 삶을 설계하고 있다. 시간은 잘도 가고 인생은 아름답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