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하나 키우는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유튜브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어느 클립이 눈에 들어왔다. 블랙핑크의 로제와 함께 '아파트'를 부른 세계적 가수 브루노 마스가 부르는 찬양곡 뮤비였다. 이 가수가 크리스찬이었어? 호기심에 들어보니 신앙 고백을 담은 노래가 너무 좋았고 대스타가 이런 찬양을 한다는 게 새로워서 한국에 있을 때 다니던 교회 친구들이 모여있는 채팅방에 올렸다. 이제는 50대 중년이 되어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져 사는 서른여 명의 옛 청년부 친구들이 사는 얘기도 하고 괜찮은 유튜브도 한 번씩 올리는 장이었다.
"흠.. 취향이 특이하네.." 누군가가 올린 댓글이 평소와는 좀 달랐다. 보통은 하트를 날리고 따뜻한 공감을 나누었는데 뭐가 특이하다는 걸까? 영문을 모르는 내게 다른 한 친구가 덧붙였다. "이거 AI가 만든 거잖아!"
'헉! 이게 진짜가 아니라고?' 황당한 마음에 다시 보니 그제야 여기저기 조악한 비디오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밑에 좁쌀만 한 글씨로 적은 AI 이미지 어쩌고 하는 설명도 그제야 눈에 띄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미리 알았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뭔가 뒤통수를 맞은 듯 배신감이 들었다. 시대가 달라지고 있구나, 앞으로 이런 혼돈을 얼마나 더 많이 겪을까란 생각부터 초상권이나 저작권은 어디서부터 얼만큼 보호받고 주장할 수 있는 걸까란 별별 고민까지 스쳐 지나갔다.
그날 밤 지역신문을 읽다가 친근한 이름을 발견했다. Gab Hester.
아들과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한 살 많은 동네 청년이었다. 크지도 않은 시골 학교라 전교생이 서로를 알기도 했고 아들과 같은 클럽에서 테니스를 치기도 했던지라 오가다 만나면 짧게 안부를 나누는 정도였다. 지난해 호주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인 '오스트레일리아 아이돌'을 보다가 깜짝 놀랐었다. 한마디로 '네가 왜 거기서 나와?'였다. 아이들이 자라며 다른 중고교를 가고 딱히 마주칠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티브이에서 훌쩍 자란 그를 만난 것이다. 게다가 기타를 치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호주 출신 세계적 밴드 Man at work의 80년대 명곡 'Down Under'를 세련되고 맛깔스럽게 재해석해서 부르는 게 아닌가! 저 오래된 노래를 어쩜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 부를 생각을 했을까? 가창력이며 음악성이며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으며 다음 라운드에 올랐다.
우리 가족은 갑자기 잘 보지도 않던 그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혈팬이 되었다. 쇼를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티브이 앞에 모여 그를 응원했다. 그러나 흥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2 라운드 팀 경선에서 팀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곡 선정을 하고 편곡을 하는 독선적인 리더를 만났고 서로 불협화음을 내더니만 그대로 팀 전체가 탈락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드라마라니..' 순전히 남 탓이고 운이 너무 없었다.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기회를 몽땅 놓친 그가 안타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겨우 거머 쥐 타이틀은 'TOP 30'였다. 지인들 외에 기억할 시청자들이 얼마나 될까 싶은.
그 후로 간간이 지역신문으로 그의 공연 소식을 들었다. 동네 카페나 지역의 작은 이벤트 무대에 서는 듯했다. 언제 한번 가보자고 마음먹었지만 또 그렇게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그런 그가 그동안의 자작곡을 모아 첫 공개하는 콘서트를 동네 골프 클럽 하우스에서 연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생일 선물을 고민하던 아들에게 이 공연이 좋겠다고 추천하여 온라인으로 표를 예매했다.
며칠 뒤 금요일 밤, 클럽 하우스 뒷방엔 100여 명의 청중이 모여들었다. 저녁을 먹거나 가볍게 한잔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세명의 밴드와 조명까지 살짝 들뜬 분위기가 제법 괜찮았다. 그는 한곡 한곡 설명을 덧붙여가며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어떤 곡은 마음속의 상처와 깊은 좌절을 담았고 어떤 노래는 여자 친구를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20살 청년이 길지 않은 삶을 나름대로 부대끼고 고민하고 정리하며 살아낸 이야기와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래서였는지, 홀이 좁아서였는지, 스피커가 빵빵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노래들이 다 마음에 와닿았고 기대 이상으로 푹 빠져 들었다. 무슨 우울이 저리 깊어 가라앉았는가 싶다가 또 무슨 힘이 나서인지 방방 뛰며 소리치는 모습에 다 같이 박수를 치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곳에서 아들을 가르쳤던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머리가 희끗한 그녀도 제자를 응원할 겸 남편과 함께 왔단다. 앞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5시간 운전을 마다 앉고 달려온 가수의 고모였다. 그러고 보니 앞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저녁을 먹던 이들은 삼촌 사촌 할머니 등등 일가친척들이었다. 학교 친구, 축구 클럽 친구들, 여자 친구가 몰고 온 또 다른 친구들..... 그러고 보니 온 가족이, 온 마을이 그를 응원하러 온 것이었다. 가수는 곡 중간중간 부모님이나 누군가를 불러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창작의 어려움을 나누기도 하고 무명 가수의 고단한 삶을 털어놓다가 불투명한 미래를 나름대로 설계하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래... 이렇게 한 발씩 걸어 나가야겠지..
가수 하나 키우는데도 마을 하나가 통째로 필요한 거구나. 이 재능 있는 동네 청년, 가수 하나 만들어보자고 온 가족과 마을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는 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를 마친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고마워했고 우리도 아낌없이 격려의 말을 전했다. 삶의 깊은 내면에서 길어 올린 무언가를 꺼내고 그 나눔에 감동하고 가는 길을 서로 응원할 줄 아는 인류가 있다면 인간의 창작 세계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AI뮤비 소동으로 살짝 혼란했던 내 마음이 그의 라이브 음악으로 위로받았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