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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날 백대백 Apr 05. 2024

낮은음 자리표

02. 커피 한잔 어떠세요.

'띠리링~'

문이 열림을 알리는 벨이 울린다.

한쌍의 젊은 연인이 들어온다.

"아~이 카페 참 아담하고 좋다. 그렇지 오빠?"

이십 대 초반쯤 되고 머리가 긴 학생인듯한 여인이 손을 잡은 상대에게 말한다.

"죄송해요. 저희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하고  있어요.

바깥 창구에서 주문을 도와드려도 될까요?"

지수는 카페 개장 준비를 하다가 미소 지으며 정중히 손님에게 말한다.

"그런가요. 안에  테이블이 있는 것 같은데..."

같이 들어온 남자가 멋쩍은 듯 말한다.

"안에 있는 테이블은 상담이 예약된 손님을 위해 비워 놓거든요."

이런 일을 위해 미리 준비된 듯 지수는 작은 팜플랫을 건넨다.


상담카페

낮은음 자리표

당신의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당신의 내면에 귀 기울입니다.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커피 한잔 어떠세요?

낮은음 자리표

상담카페


아침 10시 한 손님이 커피를 주문한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미디엄사이즈로  주세요.

'낮커'로 할게요."

지수의 카페에는 '낮커'와 '낮피'가 있다.

커피문화로 유명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는 2차 대전 중에 시작된

'카페 소스페소(cafe sospeso)'가 있는데

'주문해 두고 마시지 않는 커피'라는 의미의 기부문화다.

한 사람이 자신을 위한 커피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커피 한잔값을 더 지불하는  일종의 나눔이다.

지수의 카페에서는

기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낮커로 할게요'라고 말하면 되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낮피 주세요'라고 말한다.

몇 년 전 지수는 이탈리아 여행 중 귀국전날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당황하고 낙담했던 지수에게 근처 커피바에서 일하는

한 동양인 바리스타가 커피를 건네고 분실물센터 등 여러 곳을 전화해 주어 겨우 찾았더랬다.

아마도 심리학을 공부한 지수가 커피와 인연을 맺고 게다가 카페 소스페소문화의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그때 그 동양인 바리스타의 친절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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