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날 백대백 Apr 08. 2024

낮은음 자리표

03. 흔들리는 그네

늦은 저녁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놀이터엔 아무도 없었다.

터덜터덜 회사에서 퇴근하던 아름은 방금까지 아이들이 놀았던 듯 '끼긱'소리를 내고 있는 흔들리는 그네를  바라보다 잠시 앉아본다.


그때도 그랬다.

어릴 적 아이들은 저녁 먹으러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갈 때 아홉 살 아름은 혼자 그네에  앉아있었다.

아무도 밥 먹으라  부르는 이가 없었다.

흙장난하느라 더러워진 손을  보고 엉덩이를 때리는 엄마가 없었다.

그래도 아름은 씩씩하다.

얼른 집에 가서 더러워진 손을 씻고 밥도 지어야 한다.

8살 터울의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배고플 테니까

아빠는 저녁일을 핑계로 어디서 또 술을 마시고 계실 테니까

2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아름의 집엔 웃음이 사라졌다.

때마침 사춘기로 헤매던 오빠는 아예 어둡고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아빠는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차라리 술과 함께 현실을 외면하면서 가정 돌보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네에 앉아 머리를 숙인 아름이 다시 힘겹게 고개를 든다. 그녀의 눈에 커다란 글씨가 들어온다.

'낮다'라는 글자가

'자리'라는 단어가


'낮은음 자리표'


나보다 더 낮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 나에게는 더 이상 자리가 없다.

나는 밀려날지도 모른다.

나처럼 낮은 사람에게 세상은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아니 지금 있는 이 자리도 누군가에게 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왠지 서글프다.

아름의 알 수 없는 눈물이 왼쪽눈에서 흘러 볼을 타고 내린다.

감상에 젖은 자신이 창피한 듯 잠깐 주위를 둘러보고 일어서는 아름과 때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카페에서 나온 지수의 눈이 마주친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멈춰 있었다.

둘에게는 아마도 아주 길게 길게 멈춰 있었다.


"커피 한잔 어떠세요?

마감시간이라 정리하고 있지만 괜찮으시다면.."

따뜻한 미소의 지수가 아름을 부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낮은음 자리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