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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운 Nov 18. 2024

창을 내자

학창 시절 같은 무리에 있던 친구와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친구가 체육복을 빌려주지 않자, 그동안 쌓였던 서운함이 터져 폭발했다. 점심시간까지 예민한 상태였던 나는 다른 친구가 기분을 풀어주려 장난을 쳤지만,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버려 정색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힘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서로 사과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다 보니 묘한 기류가 흘렀다. 어색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는 어울리던 무리와 거리를 두게 되어 차차 멀어지게 됐다.


그때 함께 무리에서 멀어진 친구와 고등학교 3년 내내 둘도 없는 사이로 지냈다. 졸업 후 친구는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이른 나이에 사회에 일원이 되어 자주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나라의 부름에 따라 친구보다 먼저 입대했다.


어느 날, 나는 군대에서 몸을 심하게 다치게 되어 병원에서 누워만 있다가 의병 전역을 하게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대구에 가면 얼굴 한번 보자.

- 그래 밥 한 끼 먹자. 내가 지금 바빠서 조금 이따 전화 줄게.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그 통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후로 우리는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다. 무작정 친구를 보고 싶어도 이사를 가버렸고 연락을 취하려 시도했지만, 친구는 매번 연락을 피했다. 수소문한 끝에 들은 소식은 자격증을 취득한다는 이유로 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와 연락을 끊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연락이 안 되는 동안 친구와의 관계에 있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게 친구에게 실수를 저질렀을까. 행여 건강에 이상이 생겨 연락이 닿지 않은 걸까. 그저 친구가 먼저 연락을 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심심하면 읽지도 않는 카카오톡 채팅방에 문자를 남긴다거나 부재중 전화를 남겼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던 친구에게 서운함을 넘어 화가 나서 나중에는 연락하지 않게 됐다.


기억 속에서 친구를 서서히 잊어가던 중, 익숙한 이름의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연락 한 통에 꽁해 있던 마음은 사르르 녹아내려 우리는 바로 약속을 잡았고 4년 만에 재회했다. 친구는 교복을 입고 있던 시절의 앳된 얼굴도 아니었고, 20대 초반의 풋풋한 모습도 아닌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4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전날부터 고민을 가득 안은 채 자리에 나왔지만, 어제 헤어졌던 친구처럼 전혀 어색함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그동안 뭘 했는지, 요즘은 무엇을 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계획인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일이 있던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아쉬웠지만, '다음에 또 보자'는 말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정확한 날짜를 정하지 않았지만, 벅찬 마음을 안고 각자 할 일을 하러 가자며 자리를 정리하고는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젠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학창 시절처럼 자주 만나긴 어렵다. 그래도 다시 연락을 주고받으며 당장 고개를 돌리면 서로를 바로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삶에 창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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