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을까

by 창운

수많은 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뱉는다. 마음에 드는 문장은 메모장에 옮기고, 사진을 찍고, 무심코 SNS에 올린다. 글이 좋아서 문장을 잊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나는 자연스레 문장의 주인을 잊고 만다.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베끼고, 퍼 나르고, 인용한다. 출처는 사라지고, 문장은 낯선 옷을 입는다. 그리고, 그 옷이 잘 어울리면 사람들은 원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문장은 방향을 잃고, 이름을 잃고, 시간 속에서 길을 잃는다.


문장은 어딘가 익숙하지만, 어쩐지 낯설다. 우리가 매일 쓰는 말 중 얼마나 많은 것이 누군가의 창작물에서 왔는지조차 모른 채 말이다. 예쁜 말은 어디서든 발견된다. 시인의 노트에서, 작가의 초고에서, 블로거의 리뷰에서. 하지만, 그것은 그저 예쁘다는 이유로 내 말이 될 수 없다. 어떤 문장에는 한 사람의 시간이 녹아 있고, 어떤 단어에는 오래된 상처와 회복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런 글을 허락 없이 빌리는 건, 단지 글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까지 무단으로 가져가는 일이다.


창작이란 늘 외로운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문장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길 반복하며 새벽까지 머리를 싸매는 날들이 쌓여야 한 문단이 완성된다. 이렇게 노력이 오롯이 담긴 결과물을 한순간에 쉽게 가져가 버리는 일은 외로움을 가볍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타인의 고된 침묵 위에 내 목소리를 얹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비를 맞고, 안타까운 뉴스에 마음 아파하고, 모두가 똑같은 사계를 보내며 서로를 닮아간다. 그래서 가끔은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그건 이해받을 수 있지만, 누군가의 글을 그대로 가져와 ‘내 이야기’인 척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창작의 세계에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저작권이라는 이름이다. 그 이름은 보호의 의미이기도 하고, 존중의 다른 말이 아닐까.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가 알아봐 주는 것. 서툰 내 흔적이 지켜지는 것. 그것이 저작권이 아닐까.


우리는 더 많이 창작하고, 더 많이 나눌 수 있다. 그 시작에는 남을 생각하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언어를 빌리고 있지는 않은가?’ 자문하는 일. 창작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절이다.


어떤 말은 잠시 머무르다 가지만, 어떤 말은 끝끝내 남는다. 문장이 태어난 곳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창작이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내 문장을 가져가고 싶어질 만큼 잘 썼다면 그건 분명 기쁜 일이겠지만, 그보다 먼저 누군가 나의 이름을 기억해 주기를. 내가 지나간 자리의 흔적을 존중해 주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