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뿔난 토끼 Mar 27. 2021

버티자, 팔십까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편의 예방 항암의 졸업과 함께 우리에게는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처음 췌장암 진단 당시에 짧게는 6개월에서 항암을 하면 길게는 2년까지는 살 수 있다는 여명을 들었던  전력이 있었기에 늘 마음 한구석에는 의사가 정해놓은 여명을 뛰어넘어야 하는 생의 목표도  도사리고 있었다.

"저어, 선생님. 다음번 검진 때에는 CT(전산화 단층촬영) 말고 MRI(자기 공명 영상)로 찍게 해 주세요."

의사는 이미 이런 부탁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왜요? 방사능 피폭 때문에요?"

"네."

"CT가 가장 정확하게 잘 보여요. 어차피 췌장암 환자들 이년 못 넘겨요. 대부분 이년 안에 다 재발해요."

"........."

의사의 정확하고 명쾌한 답변에 순간 당황해서 할 말을 잃었고, 힐끔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인처럼 말없이 앉아있다.

의사 앞에서 몹시도 작고 초라한 암 환자의 모습인  남편을 보니 밑도 끝도 없이 남편에게 미안하고 이런 말을 듣게 해서 마치 내가 남편에게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았다.

남편은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렸을 뿐인데, 암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몸도 마음도 충분히 지치고 아팠는데 여기서 얼마나 더 아파야 지긋지긋한 몸과 마음의 상처가 아물 수 있을까?

마음이 저렸다.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절대로 울면 안 되는데 이럴 때마다 주책 맞게 암 환자 보호자의 서러운 마음을 눈물이 먼저 알아차리고 친절하게 마중까지 나온다.     

그동안 체벌교육문화에 길들여져서 온순함이 미덕인 줄 알고 살아왔던 나에게  의사의 무덤덤한 말이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었겠지만, 겉으로는  태연을 가장한 채 조용히 의사 앞에 서있으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가까스로 참고 있었던 예의범절과  분별력도 사라지고 육두문자가 저절로 나온다.

'............ 이런 조카 크레파스 십팔 색이야.'

이년 안에 대부분 재발이 된다고?

그럼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수술을 했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고통스러운 항암의 과정을 겪었고,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이년을 못 넘긴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데?

고작 이년을 살자고 그렇게도 힘든 과정을 지나와야 했다고?

지금 장난 해?

그냥 남편은 오다가다 실수로 암을 만나서 지금 암과 헤어지는 과정을 겪고 있을 뿐인데, 왜들 그렇게 수학 방정식처럼 췌장암은 힘든 암이고 재발하는 규칙이 이년 안에 거의 대부분 발생한다고 단정 짓고 떠들어대고 있는 거냐고.

이러 된장.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어서 중년에 이런 날벼락을 시도 때도 없이 맞고 살아야 하는 걸까?

‘에라 나도 모르겠다.’

나는 남편에게 또 다시 숙제를 하나 내밀었다.

“버티자. 팔십까지만.”

의사로부터 췌장암은 어차피 이 년을 못 넘기니 암의 재발을 가장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는, MRI(자기 공명 영상) 보다  정확한 CT(전산화 단층촬영)로 검사를 하는 것이 진리라는 말을 듣는 그 순간, 나는 남편과 나의 생애에 가장 간절한 소원 한 가지를 만들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십 살까지만 버텨보자.

다들 지나가는 쉬운 말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이미 가는귀먹어서 남의 말 잘 안 들리고,  어차피 성질도 더러워서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산지 한참 됐다.     

됐고.

 우린 지금부터 무조건 버틸 거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십까지만.     

남편의 기대수명을 팔십 세 까지로 정한 날부터 우리에게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절망보다는 희망이 훨씬 가까운 이웃사촌이 되었다.

일찌감치 돈에 눈이 멀어 헌금이 아깝다고 교회와도 손절했던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을 팔십 세 까지 살게 해 달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으며 밥을 먹다가도 마트에서 물건을 사다가도 문득문득 내 남편을 팔십까지만 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며 하나님이 귀찮고 성가셔서라도 들어줄 만큼 되뇌고 있다.

“하나님, 제발 팔십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 전 하나님이 반드시 그렇게 해 주실 거라 믿어요.”     

작가의 이전글 갈림길에서의 선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