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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뿔난 토끼 Mar 28. 2021

다시 재발일수도?

방법을 찾아보자.



췌장암 수술과 예방 항암의 졸업과 함께 4개월에 한 번씩 혈액검사와 CT(전산화 단층촬영) 검사로 추적관찰 중이던 남편의 혈액검사 결과에서 췌장암 종양표지자(CA19-9) 수치가 또다시 세 번에 걸쳐서 오르막길이다.

주치의는 미미하게 오른 수치이지만 세 번 연속해서  상향으로  암 수치가 올라가는 것은 재발의 위험이 있다고 했으며  남편에게 약 한 달 보름간의 시간을 주었다.

그리하여 한 달 보름 후의 혈액검사 결과에서 다시 췌장암 종양표지자(CA19-9) 수치가 올랐을 경우에는 재발로 판단해서 몸속에 숨어있는 암을 찾아내기 위해 각종 검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암의 재발일 수도 있다고?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남편이 처음 암 진단받을 때가 떠오른다.

암은 아니겠지.

아냐, 건강한 내 남편이 암이라니, 절대로 그럴 리 없어.

그러다가  결국에는 암 진단을 받았었고 그 이후에 암을 투병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나는 이 생에서 울어야 할 눈물의 90%는 이미 소진해서 다 탕진했다 싶을 만큼 수시로 솟구치는 눈물을 쏟아내야 했고  매 순간마다 겪는 삶의 이런 저런 아픔 때문에 남몰래 쓰디쓴 눈물을 삼켜야 했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또다시 우리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처럼 암담한 상황을 만나 처음부터 다시 암치료를 시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 속에서는 울렁증이 생긴다.

암의 재발일 수도 있다고?

막아야 해.

우리에게 그런 끔찍한 일은 단 한 번으로 족해.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다시 냉정하게 남편의 상태를 점검해 봤다.

남편의 모습은 허벅지에 근육도 제법 튼실하게 붙어있고 식욕도 왕성해서 겉으로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고, 몸속에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암 수치가 점점 오르고 있으니 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암 수치가 오르는 원인을 빨리 찾아내서 해결하지 않으면 또다시 우리는 병원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며 온갖 설움을 감내해야 하는 서글픈 암 환자의 삶을 재현해야 한다.

그 길은 이미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해서 남편도 나도 결코 원하지 않는 일이다.     

이때부터 미친 듯이 인터넷을 검색해가며 암 수치가 증가하는 작은 원인조차도 찾아 헤매었다.

찾아보니 췌장암의 종양표지자(ca19-9) 수치는 담도암, 췌장암에서도 수치가 오르지만 췌장염, 위궤양, 궤양성 대장염, 당뇨 등의 암이 아닌 양성질환에서도 오를 수 있다고 되어있었다.

그런데 췌장암 수술로 췌장이 없는 남편은 1형 당뇨환자이니  당뇨로 인해 암 수치가 일시적으로 오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주치의의 생각은 세 번 연속으로 올랐기 때문에 충분히  재발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한 달 반이라는 시간 안에 암 수치를 내리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는데 우리는 아직 그  방법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무지한 현실이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넋 놓고 포기할 수는 없다.     

무슨 짓이라도 해봐야 해.

다시 방법을 찾아보자.

이 때 우리는 이전의 경험을 생각하고 또 다시 산에 가서 걷기 운동을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길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으로 간에 있었던 종양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던 치료의 길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우리는 산에 가서 걷기운동을 하는 이 길을 아무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2020년 여름,  긴 장맛비가  쏟아져서 남편이 산행을 멈춘 사이에 남편의 몸 속 에서는 다시 암수치(CA19-9)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의사로부터 재발로 의심된다는  말을 들은 그 날부터 남편은 산에 가서 하루 평균 5시간에서 6시간을 걸어 다니며 암수치를 내리기 위한 노력을 했다.     

2020년의 여름은 장장 54일 동안 비가 내렸을 만큼 엄청난 습기로 집안까지 눅눅한 날씨였지만 암 경험자에게  이런 날씨쯤은 당연히 극복해야 할 가벼운 장애물정도로 여겨졌다. 장마로 비가 억수로 쏟아질 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비를 입고 산으로 향하는 남편의 모습은 비장하기 까지 했다.     

비가 오는 날, 암에 걸리지 않은 어떤 이들은 경치 좋은 카페에 앉아서 커피 향을 음미하며 빗소리를 감상하겠지만,  암에 걸린 경험자인  남편은 다시는 암과 만나고 싶지 않은 간절함에 우비를 입고 산속을 헤집고 다니며 그렇게 비와 거침없는 만남도 불사하며 암과 다시는 만나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쳤다.     

암에 걸리기 이전에는 전혀 생각한 적도 없었던 사실이지만, 한 번 암에 걸리고 나니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일상도 우리에겐 호락호락 허락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남편의 끈질긴 산행 덕분이었을까?

한 달 보름 후의 혈액검사 결과에서 남편의 췌장암 종양표지자(CA19-9) 수치는 드디어 오르막길을 포기하고 내리막길로 접어들었고 남편과 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재발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100세 인생이라고 떠들어대는 이 시기에 인생의 반 토막을 소비한 50세를  넘기고 보니 인생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탄하게 흘러가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길을 모를 때는 묻고 또 물어서 길을 찾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축적되었다.

우리는 매번 장애물을 뛰어넘으면서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삶을 살 수 있음에도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우리가 절대로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길이 있다는 진리를 깨닫고 또 깨닫게 된다.

암만 생각해도 포기란 배추 썰 때만 필요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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