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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Oct 03. 2023

다시 찾은 제주도(제주 1일 차)

내가 제주를 찾은 것은 약 두 달 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그 여름 나는, 나의 에고를 찾기 위해 8일간 제주에 머물렀다. 결국 나의 자아를 찾지 못했을까. 계절은 어느새 하늘이 높아 말이 살찌운다는 천고마비의 가을로 치닫고 나는 다시 제주를 찾았다. 


학습률이나 습숙률이라는 말이 있다. 반복 학습을 말한다. 지난번의 제주 여행으로 학습률이 생긴 내게 여장을 꾸리는 일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처럼 빨랐다. 마치 능숙하게 군장을 싸는 노련한 노병처럼 10여분 만에 여장을 꾸려 여행길에 올랐다. 


8시 30분에 녹동발 제주행 여객선에 승선했다. 매점에서 라면을 주문했다. 바다 옆에서 먹는 라면은 어떤 향기가 날릴까. 나는 라면에 어제의 숙취를 섞었다. 


선상에 올랐다. 아스라이 보이는 금당도가 멋진 주상절리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그리고 선상에 한 줄기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끝내 알 수 없었다. 아마 제주의 바람도 그럴 것이다. 제주에는 늘 바람이 분다.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바람이 분다. 더 살아야 되겠다.' 바람은 생명의 용솟음일까. 문득 바람의 정체가 궁금했다.  


선상의 난간에 기대어 선다.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는 넘어지고 자빠지며 하얀 게거품으로 부서져 내린다. 어쩌면 배를 끌고 가는 것은 기체가 아니라 부서지는 파도의 거품일지도 모른다. 파도가 하얀 게거품을 게워낸 만큼 선박은 긴박하게 나아갔다. 


여객선은 10분 지체되어 1시에 나를 제주에 내려놓았다. 서귀포중앙도서관으로 이동하다가 우연찮게 엉또폭포 이정표를 만났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제주가 숨겨놓은 비경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다. 바로 핸들을 꺾었다.  제주 방언으로 '엉'은 작은 굴이라는 뜻이고 '또'는 입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차장에 내렸을 때 엉또폭포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밀감나무 아래에서 삽을 들고 있던 촌로한테 물었다. 그는 다리를 건너 데크로드가 놓인 길을 따라 5분만 올라가면 엉또폭포에 도착한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마침내 엉또폭포에 도착했다. 하지만 물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단 한가닥의 폭포수마저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서야 엉또폭포는 한바탕 비가 쏟아져 내려야 위용스러운 자태를 드러낸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무한테나 보여주지 않는 것은 비가 올 때야 그 절경을 세속에 내어 놓기에 그래서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이 엉또 폭포가 제주에 숨겨놓은 비경의 이유다. 


아래 사진은 한 달 전 돌풍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300미리 비가 한라산에 쏟아졌을 때 엉또폭포의 장면이다. 제대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 때면 거대한 폭포 물줄기가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것은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장면처럼 보인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은 밀감나무밭이었다. 가지 끝마다 무리 지어 귤이 열렸다. 휘늘어진 가지는 버티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강한 생명력이 경이롭다. 사실 귤은 파란색일 때 이미 다 익었다고 한다. 소비자가 노란 귤만 선호해서 고객의 만족도 고취를 위해 파란색 귤에 인위적으로 열을 가해 황색으로 탈색한다고 한다.  


서귀포중앙도서관에 왔다. 앞에는 고뇌하는 중년의 눈빛이 숨어 있다. 어떤 글을 쓰면서 저렇게 번민하고 있을까. 나도 어쩌면 도서관에 와서 제주에 부는 바람과 내리는 비의 흔적을 고스란히 적으면서 저 고뇌의 눈빛을 닮아갈지 모른다. 


게스트하우스를 얻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숙소였다. 숙박료도 현금 4만 원으로 저렴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50대의 중년의 주인은 상냥하면서 친절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 지가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내가 관광지 위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자 올레길 코스를 적극 추천했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이 되었다. 여행 중 먹거리는 빼놓을 수없는 묘미다. 지난번 여행에서 찾았던 황금어장 횟집을 다시 찾았다. 주인아줌마가 나를 알아본다.  


제주를 여행하면서 회는 실컷 먹을 것이다. 3만 원짜리 한치회를 주문했다. 나를 단골로 생각했을까. 전어회가 서비스로 올라왔다. 한치회는 여전히 식감이 좋았다. 나는 고독을 즐기며 소주 한 병에 추억을 채워 마신다.  


숙소까지는 약 20여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숙소가 다 와갈 무렵 편의점을 들렸다. 일본 여행 가서 맛에 반한 아사이 맥주 4캔을 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우리나라 맥주는 일본 맥주를 따라가지 못한다. 깊이 있고 깔끔한 아사이 맥주, 깨끗하고 부드러운 삿포로 맥주, 그리고 전통의 깊은 맛 기린 맥주. 그래서 세계에서도 일본맥주만큼은 인정한다.   


바다가 보이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신다. 안주는 서울우유를 탄 팥빙수다. 달달한 바다가 맥주의 파도를 타고 내게로 와 하얗게 포말로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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