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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Dec 18. 2023

디미트리 베르휠스트의 ‘사물의 안타까움성’을 읽고


다산 정약용 선생은 독서야 말로 인간이 해야 할 첫째의 깨끗한 일이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한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켜켜하게 쌓여가면서 자꾸 책과 소원해지는 것 같다. 문득 사물의 안타까움성이 아니라 나 자신의 안타까움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최근에 디미트리 베르휠스트의 장편소설 '사물의 안타까움성'을 통하여 온전히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읽을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읽은 몇 권의 책이 모두 성장소설을 테마로 하고 있었다. 먼저 김수영의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와 김려령의 완득이, 세 번째가 바로 디미트리 베르휠스트의 ‘사물의 안타까움성’이다. 

그런데 세권 모두 다 불우한 환경에서 말미암은 성장과 체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외견상으로 많은 다양성을 가져오고 있다. 그 다양성은 때로는 예술지상주의적 예술관으로, 때로는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때로는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순종으로 그려진다. 


김수영의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전남 여수로 스며들어가면서 작가의 불행한 삶이 시작된다. 공사판을 전전긍긍하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더 이상 가정의 생계를 담보할 수 없고 파출부로 나가는 어머니의 일당을 통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연명해 간다. 게다가 작가는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 가출을 밥먹듯이 한다. 학교 선생님마저도 ‘너 또 가출했다며? 제발 가출 성공해라. 그래야 우리가 널 퇴학시키지’하고 비아냥거렸다. 


김려령의 ‘완득이’는 주인공이 카바레에서 구두춤을 추는 편부슬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환경도 지지리도 가난하여 학교에서 햇반을 받아먹어야 했다. 공부도 지지리도 못하고 잘하는 것이라는 맨날 하는 싸움질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꼽추인 아버지, 필리핀에서 온 어머니, 어수룩하고 말까지 더듬는 가짜 삼촌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결코 슬프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작중 인물이 받아들여야 하는 암울하고도 무거운 현실을 침울하게 그리기보다는 밝고 담대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디미트리 베르휠스트의 ‘사물의 안타까움성’은 흡사 알코올중독자 같은 아버지와 삼촌들, 쥐꼬리만 한 연금으로 힘들게 삶을 연명하는 늙은 할머니, 그들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온당한 시선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낸다. 주인공의 삶은 그의 친구 프랑키에 의해 고스란히 전이된다. ‘아버지가 그러는데 너희 가족은 막장 인생이래, 루저인 거지, 너희 같은 사람들은 보조금이 없다면 꼼짝도 못 하고 진작 뻗었을 거래. 너희는 인위적인 사회보장 제도의 도움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허약계층인 거야, 싸움질이나 하고 마을의 하수구랑 교미를 하지, 원래 태생이 빌붙어 사는 기생충 족속이라더군,’ 


주인공들의 허기지고 가난한 삶이 외견상의 다양성을 가져오는데 그렇다면 작가는 소설에서 어떤 식의 절망을 택하고 또한 가난의 탈피 양상의 방편으로 무엇을 택할까. 그리고 작가는 소설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먼저 저마다 다른 소설의 탈피양상을 살펴보자. 


김수영의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는 고전적인 성공신화 스토리다. 주인공은 배회와 방황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가 중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상고에 들어간다. ‘너희가 정말 노력하면 대학도 갈 수 있고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어.’ 하고 말한 선생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고 열심히 공부해 마침내 <도전골든벨> 대회에서 실업계고 처음으로 골든벨을 울린다. 


또, 삼성에 입사하는 조건으로 연세대에서 4년 내리내리 장학금을 받지만 등록금을 반납하고 해외로 견문을 확대하여 골드만삭스에 입사하기까지 한다. 3분의 1은 한국에서 살았으니 또 다른 3분의 1은 전 세계를 돌며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서 살아보겠다는 그녀. 이 얼마나 멋진 포부인가. 목표기한, 중요도, 달성여부, 달성연도까지 73개의 꿈을 적어놓고 이미 13개의 꿈을 이루어 놓은 그녀. 이 얼마나 당차고 멋진 삶인가. 


김려령의 완득이는 성공 신화적이지도 않고 ‘사물의 안타까움성’ 주인공 디미트리처럼 반항아도 아니다. 소설적 주인공 완득이 역시 그저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동주선생님을 교회에 나가 죽여주라고 기도하는 정도가 전부다. 기돗발이 먹히지 않자 앞으로는 교회에 나가겠다고 협박하지만 그것도 악의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귀여운 캐릭터로 다가온다. 그런 완득이가 동주선생의 도움으로 어머니도 만나고 또 반에서 1등을 하는 모범생인 여학생과 서로 힘이 되는 아름다운 사랑도 한다. 또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킥복싱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고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면 디미트리 베르휠스트의 ‘사물의 안타까움성’은 빈민한 굴레를 어떻게 극복해 갈까. 태어나면서 코딱지만 한 공동주택에서 살아야 했던 주인공, 밤을 새워 술 마시고 새벽에 만취한 채로 집에 돌아오는 삼촌들, 노상방뇨와 술추렴, 술집 작부를 희롱하거나 폭력으로 대하는 행위, 난무하는 외설적인 농담들, 도저히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날들. 그런데 작가는 일탈된 자유를 통해 추억이 서린 고향을 역설하고 있다. 합법성과 합리에 유린당하면서도 일탈에 순응하고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우회하는 쪽을 택한다. 음울하거나 의기소침한 분위를 좌절이나 절망된 분위기로 이끌어가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감내해야 할 아픔의 일상을 전혀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디미트리 베르휠스트는 ‘사물의 안타까움성’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주정뱅이보다도 진솔하게 삶을 살지 못하는 위선적인 우리들에게 삶의 화두를 던지는 것일까. 아니면 조숙한 주인공 디미트리를 통해 가족의 가난을 옹호하고, 가난을 패배로 인정하지 않는 다른 시각을 전이시키는 것일까. 


이 책은 벨기에서 영화로도 상영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는 반증일 게다.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주인공의 아픔이 때로는 경쾌하게 그려지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김훈의 ‘남한산성’이나 ‘칼의 노래’를 읽었을 때의 암담함, 또한, 공지영의 도가니를 읽었을 때처럼 항거할 수 있는 안타까움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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