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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May 24. 2024

4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국민학교 친구

50대 중반이 되어 싱가포르에서 재회했다



옛 친구를 만날 생각에 너무 설레서 잠을 설쳤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앞두고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린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친구와 국민학교를 졸업한 지 40여 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지난 열흘은 친구를 만날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살랑거렸다. 약속 장소는 내가 정해 알려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조용히 대화하고 싶었다.


며칠 동안 약속 장소를 고민해 보았다. 클락키로 가면 친구가 묵는 호텔에서 가까워 편리해 보였다.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강변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것도 좋을 듯했다. 하지만 야외라서 덥고, 음악 소리가 커서 시끄러울 것 같았다. 호텔 근처 장어덮밥 맛집에 가도 좋지만 식사 후에 카페로 자리를 옮겨야 해서 번거로울 듯했다. 호텔에서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내가 종종 가는 오차드 PS.Café가 제일 나을 것 같았다. 친구에게 식당 링크를 보낸 후 약속 장소가 어떤지 물어보았더니 친구도 좋다고 했다.


PS.Cafe Palais Renaissance


약속한 날이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갔다. 약속 시간보다 15분쯤 일찍 도착했다. 메뉴를 대충 훑어본 후 친구를 기다렸다. 예약자 이름을 대면 직원이 내 자리로 안내해 주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한눈에 친구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브런치글을 읽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ㅇㅇ야!”하고 친구가 내 이름을 불렀다.

“ㅇㅇ아! 정말 반갑다. 어우 야, 진짜 너무 반갑다.”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팔을 벌려 기쁘게 안았다. 친구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뽀얀 얼굴에 매끈한 볼도 여전했다. “우리 진짜 이렇게 만났구나. 정말 실감이 안 난다…” 두근거렸던 가슴이 그제야 진정되었다.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먼저 주문부터 하자고 했다. 메뉴를 훑어보았다. 나눠 먹을 메뉴로 트러플 감자튀김을 주문하고, 메인 메뉴로 나는 왕새우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친구는 도미구이를 주문했다. 음료수로는 민트 앤 라임 소다를 선택했다.


“너는 아이가 몇 명 있어?” 친구가 물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있어. 너는?”

“나는 딸 하나 있어.”

“그렇구나. 출산 후에도 계속 일했어?”

“응. 대학 졸업 후부터 쭉 회사에 다녔어. 그런데 3년쯤 전에 번아웃이 와서 지금 좀 쉬고 있어. 노트북을 열어보고 싶지도 않더라고.”


친구는 결혼 후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몇 년 동안 딸과 둘이 미국에서 지냈다고 했다. 친구와 남편의 해외출장이 겹칠 때는 딸이 다른 보호자와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이제 딸이 대학생이 되어 혼자 있어도 걱정이 덜 되고, 딸과 친구처럼 가깝게 지낸다고 했다. 외국계 회사에서 전문직 직장인으로 인정받으며 일해 온 것 같았다. 열심히 살아온 친구의 인생이 한눈에 그려졌다.


나도 오랜 해외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애환을 말했다. 미국에서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이들을 돌봤던 게 힘들었고, 싱가포르에서는 남편의 잦은 출장으로 인해 나 홀로 아이들을 책임지고 돌 때가 많아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고 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 위해 대학교 때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공부를 했고, 그 후로도 치열하게 노력하며 워킹맘으로 일했다고 말했다. 친구와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살았지만 열정을 갖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 점은 서로 닮아 있었다.


트러플 감자튀김, 도미구이


음식이 서빙되기 시작했다. 먼저 트러플 감자튀김이 나왔다. 바삭한 감자튀김에 눈꽃처럼 얇게 간 파마산 치즈가 뿌려져 있었다. 고소한 트러플 오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평소에 감자튀김을 잘 먹지 않지만 이 식당에 오면 꼭 주문해서 먹는 편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는데, 친구가 나보다 한 발 앞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하하, 너도 사진 찍는구나!”

“응, 나는 항상 사진을 찍어. 이렇게 찍어 두면 기억하기 좋잖아.”


내 주변의 지인들은 사진을 별로 찍지 않은 편이라 친구의 행동이 엄청 반갑게 느껴졌다. 뭐든 사진으로 남기길 좋아하는 나와 비슷했다.


“감자튀김 맛이 어때? 이 식당 인기 메뉴야.”

“응. 고소한 게 맛있네.”


이어서 내가 주문한 스파게티와 친구가 주문한 도미구이가 나왔다. 스파게티 양이 꽤 많았다. 친구에게 조금 덜어주고, 친구도 내게 도미구이 한 토막을 나눠 주었다. 왕새우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가 정말 맛있었다. 약간 매운맛이 도는 소스에 싱싱한 왕새우, 껍질콩, 살짝 튀긴 빵가루가 얇은 굵기의 스파게티와 잘 어울렸다. 느끼하지 않고 입에 착착 감기는 알리오 올리오였다. 레몬 앤 라임 소다와 함께 먹으니 기분 좋은 맛이 올라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대화가 더 즐거웠다.


왕새우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초콜릿 케이크, 커피


“너는 무슨 운동 좋아해?” 친구에게 물었다.

“나는 PT를 받거나 필라테스하고, 주말에는 남편하고 골프를 자주 쳐. 너는?”

“나는 오래전부터 줌바댄스 하고 있고, 아파트 헬스장에서 주로 근육운동 해.”

“그래. 일도 좋지만 건강이 최고인 것 같아. 가능하면 건강식 먹고 운동해야지.”


40여 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는 낯설거나 어색한 느낌 없이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식당 직원이 계산서를 가져왔다. 영업 마감 시간이 다 되었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4시간이나 흘렀다. 앞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일어섰다. 나는 기분 좋게 계산을 하고 친구와 식당을 나섰다.


오차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이 길을 함께 걷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오랫동안 소식이 닿지 않은 옛 친구를, 한국도 아닌 싱가포르에서, 그것도 말레이시아에 사는 친구를 만난 게 꿈만 같았다. 금세 오차드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서로 지하철을 탈 방향이 달라 이만 헤어져야 했다. 아쉽지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따듯하게 채워져 있는 것을 느꼈다. 친구에게 카톡으로 즐거웠다는 메시지와 함께 하트 이모티콘을 보냈다. 조금 후 친구도 하트 이모티콘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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