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아이콘의 삶’ 몰입형 전시회를 보기 위해 오랜만에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에 위치한 아트사이언스 뮤지엄을 찾았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는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이번 몰입형 전시회는 나에게 더욱 의미가 있었다.
전시장 입구
전시회입장및첫인상
티켓은 온라인으로 예매해 두었다. 핸드폰에 다운로드해 놓은 QR코드를 스캔하여 입장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전시는 프리다 칼로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는 오렌지색 제단으로 시작되었다. 제단은 꽃, 해골, 과일, 초 등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축제 기간 동안 고인을 기리기 위해 가족이 만든 전통 제단인 오프렌다를 재현한 것이었다. 이 제단은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을 축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순간
조금 걸어가니 ‘순간’이라는 제목의 디지털 아트 설치물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다 칼로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끔찍한 사고 순간을 재현한 작품이었다. 이 설치물은 비디오 투영층을 겹쳐 3차원 효과를 연출하였고, 어두운 조명과 효과음이 더해져 실제 사고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주었다.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서둘러 다른 공간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랑의정원
‘사랑의 정원’ 공간은 프리다 칼로의 블루 하우스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관람객들은 꽃잎 모양의 종이에 자신에게 사랑과 기쁨을 주는 것을 적어 꽃대에 꽂아 정원을 꾸미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단어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동물, 밀크티, 부모님, 친구, 강아지, 여행, 음식’ 등 다양한 단어들이 눈에 띄었다. 나도 꽃잎 모양의 빨간색종이에 펜으로 ‘우리 가족’이라고 적었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단연코 ‘우리 가족’이다. 나의 모든 사랑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꽃과 같은 존재들이다.
사랑의 정원
꿈, 끝없는상징
조금 더 들어가니 오른편에 ‘꿈’이라는 제목의 멀티미디어 설치물이 있었다. 프리다 칼로가 침상에 누워 작품의 영감을 받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었다. ‘끝없는 상징’이라는 공간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을 360도 프로젝션으로 방 안에 가득 채워 상호작용할 수 있게 했다. 원숭이, 꽃, 파인애플, 수박, 해골 등의 소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움직이는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꿈
끝없는 상징
라로시타
‘라 로시타’라는 공간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이 인쇄된 종이에 크레용으로 색칠한 후, 그 결과물을 대형 프로젝션 스크린에 투영하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가장 먼저 꽃을 칠했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과 같은 원색을 사용하여 정열적이고 화려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크레용으로 색칠한 프리다 칼로 초상화
색칠하다 보니 열정 가득했던 20대 시절 프리다 칼로 덕분에 첫 취업에 성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 졸업 즈음 꼭 입사하고 싶던 E 회사에서 채용 공고가 났다. 경력이 2년 이상이어야 했지만 이력서를 제출해 보았다. 1차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으나 한 달 후 E 회사 인사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두 차례 영어 인터뷰 후, 사장님과의 마지막 인터뷰를 보았다. 업무 관련 질문을 하실 거라고 예상했는데, 예상과 달리 사장님은 좋아하는 화가가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자신 있게 프리다 칼로라고 답했다. 프리다 칼로의 강인한 정신과 창의적인 예술 작품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다. 얼마 후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되었다. 그 이후로 프리다 칼로는 나에게 고마운 존재이자 특별한 의미를 가진 화가가 되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색칠을 하니 마음이 뜨거워졌다. 색칠을 마친 후 종이를 스캐너에 넣어 스크린에 띄웠다.
색칠한 초상화를 스크린에 띄웠다.
몰입형체험공간
전시회의 하이라이트인 몰입형 체험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전기적 이야기를 360도 프로젝션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30분간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몰입형 체험
프리다의 내면세계
이번 전시회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프리다의 내면세계’ 공간이었다. 프리다 칼로가 사망할 때까지 치료받았던 멕시코시티의 아메리칸 브리티시 코우드레이 병원의 의료 문서와 척추 엑스레이 복제본을 볼 수 있었다. 아울러 스페인어로 쓰인 프리다 칼로의 일기 복제본도 전시되어 있었다. 프리다 칼로는 일기에 가장 깊은 내면의 감정을 담았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고통을 예술 활동을 통해 승화시키며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았던 프리다 칼로가 존경스러웠다. 마지막으로, 프리다 칼로의 침실에서 시작되는 가상현실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왼쪽) 척추, 하부, 상부 사지, 골반 및 복부에 심한 부상을 입은 프리다 칼로의 모습. (오른쪽) 프리다 칼로의 조카, 크리스티나 칼로 알칼라와 의료 전문가들의 독점 인터뷰
(왼쪽) 혈액 검사 결과지. 병실 호수와 수술 집도의들의 이름도 있었다. (오른쪽) 프리다 칼로가 착용한 의족 사진.
프리다 칼로의 어머니는 침대 위에 거울과 특수 이젤을 설치하여 프리다 칼로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프리다 칼로의 일기, 손상된 몸임에도 불구하고 날개가 달린 모습을 그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희망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번 디지털 몰입형 전시회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설치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프리다 칼로의 고통과 열정, 그리고 예술적 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원본 그림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프리다 칼로의 삶을 되짚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전시 정보>
제목: Frida Kahlo: The Life of An Icon (프리다 칼로: 아이콘의 삶)
장소: Singapore ArtScience Museum (싱가포르 아트사이언스 뮤지엄, Bayfront 지하철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