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짜리 핫도그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뉴욕에서 처음 뮤지컬을 만났다

by 황여울

오랜만에 미국식 핫도그를 만들었다. 칼집을 낸 소시지를 물에 데친 후 프라이팬에 돌돌 굴려가며 구웠다. 핫도그빵을 살짝 데운 후 빵 안쪽에 마요네즈를 얇게 펴 발랐다. 다진 적양파와 스위트릴리쉬를 넣고 구운 소시지를 그 위에 올렸다. 마지막으로 케첩과 머스터드를 뿌려 주었다. 예쁜 접시에 담아 식탁으로 가져왔다. 혼자 먹는 점심으로는 이보다 더 간편할 수가 없다. 핫도그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짭조름한 소시지맛과 바비큐향이 입안에 감돌았다. 뽀드득 씹히는 식감도 좋았다. 몇 입 더 베어 먹다 보니 문득 오래전 뉴욕에서 거의 매일같이 먹었던 핫도그가 생각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30년 전 뉴욕 물가는 상당히 비쌌다. 시카고 외곽에 살 때와는 큰 차이가 났다. 학교 구내식당만 해도 음식 값이 1.5배는 족히 더 비쌌다. 메뉴도 다양하지 않은 데다가 음식 맛도 별로 없었다. 점심은 가장 싼 샌드위치나 랩을 사 먹었다. 일본식 김밥이나 반찬 등을 살 수 있는 아시안 델리 가게에 가면 사고 싶은 건 많았지만 너무나도 비싸서 손이 오그라들었다. 김밥 몇 조각과 계란말이 한 조각을 사서 배를 채웠다. 저녁은 공용 주방에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정말이지 꼭 필요한 것만 샀다.


나와 같은 방을 썼던 룸메이트가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했다. 학생 러시 티켓(Student rush ticket)을 사면 많이 비싸지 않다고 했다. 학생 러시 티켓은 각 극장에서 당일 남는 좌석을 학생들을 위해 아주 싸게 파는 건데 보통 70% 정도 대폭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뮤지컬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무척이나 궁금했다. 밥값도 아끼는데 공연을 보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뉴욕에 온 이상 뮤지컬을 안 볼 수는 없었다. 며칠 뒤 룸메이트와 함께 뮤지컬을 보러 극장에 갔다. 지하철요금도 아낄 겸 걸어서 갔다.


맨해튼은 길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스트리트와 애비뉴만 알면 지도 없이도 찾을 수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지하철을 타고 다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게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에 핫도그 가판대가 보였다. 메뉴판을 보니 핫도그와 콜라 한 잔이 단돈 1달러였다. 치즈, 고추, 피클 등의 토핑을 선택하거나 칠리소스를 올리면 추가로 돈을 내야 했다. 나는 토핑이 없는 기본 핫도그를 주문했다. 흰 종이에 무심하게 얹어 준 핫도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핫도그빵에 소시지만 넣고 케첩과 머스터드를 뿌려줬을 뿐인데 내 입맛에 잘 맞았다. 길거리에 서서 음식을 먹는 게 많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학교 구내식당 음식보다 오히려 더 맛있었다.


한 시간을 걸어 42번가 브로드웨이에 도착했다. 길을 따라 몇 블록을 더 걷다 보니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을 공연하는 극장이 나왔다. 학생 러시 티켓이 약 10달러였다. 티켓을 산 후 공연 시간에 맞춰 극장에 입장했다. 생각보다 극장이 꽤 컸다. 맨 앞 줄 가장 측면 자리를 배정받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봐야 했지만 배우들의 몸짓과 숨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어 실감 났다. 나는 공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무대장치는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다. 공연이 끝나고도 가슴에 여운이 길게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뮤지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창밖으로 비치는 불빛은 무대 위 조명 같았다. 2층 침대에 누워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려 보다가 잠이 스르르 들었다.


뮤지컬을 계속 보러 가고 싶었다. 최대한 돈을 아껴 썼다. 아침과 점심은 간단하게 먹었다. 주로 식빵이나 베이글에 잼을 발라 먹거나 우유와 함께 시리얼을 먹었다. 핫도그 가판대에서 1불짜리 핫도그도 자주 사 먹었다. 저녁에는 기숙사에서 밥을 해 먹었다. 간혹 외식을 할 때면 학교 근처 중국 식당에서 제일 싸지만 내 입맛에 잘 맞는 마파두부를 먹었다. 부들부들한 두부와 다진 돼지고기가 매콤하고 걸쭉한 소스에 잘 어우러졌다. 한 수저씩 떠서 밥에 비벼 먹으면 꿀맛처럼 느껴졌다. 1달러짜리 핫도그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그렇게 돈을 아끼고 모아서 뮤지컬을 보았다. 뮤지컬을 보러 갈 생각을 하면 다 괜찮았다. 캣츠, 레미제라블, 미스사이공, 미녀와 야수, 시카고 등을 보고 또 보았다.


피골이 상접하여 한국에 돌아왔지만 후회가 없었다. 때때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힘이 들면 가슴에 품어 둔 뮤지컬 한 장면을 꺼내 보며 마음을 달랬다. 1달러짜리 핫도그가 그리울 때는 백설 후랑크 소시지를 사서 식빵에 돌돌 말아 구운 후 케첩을 뿌려 먹었다. 뮤지컬이 보고 싶을 때면 CD로 뮤지컬 넘버들을 들었다. 뉴욕에서 보낸 날들은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참 풍요로웠다. 왕복 2시간 거리는 걸어 다녔고 모든 걸 아끼고 또 아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50대가 된 지금도 나는 뮤지컬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싱가포르에는 한국처럼 볼 만한 창작 뮤지컬이 없다. 매년 해외 인터내셔널 투어 몇 팀만 올뿐이다. 비싸지만 인기가 좋기 때문에 미리 표를 예매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같은 공연을 몇 번씩이라도 보고 싶지만 티켓 값이 비싸서 참아야 한다. 공연은 주로 저녁에 열린다. 공연장에 갈 때 나는 저녁을 먹지 않고 간다. 늘 공연장 매점에서 핫도그와 콜라를 사 먹는다. 핫도그빵 안에 길쭉한 소시지 하나 달랑 들어있는데 턱없이 비싸기만 하다. 맛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뮤지컬 공연을 보기 전에는 늘 핫도그와 콜라를 사 먹는다. 그건 내게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핫도그를 먹는 동안 뮤지컬에 진심이었던 20대의 나를 만나고,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마음만큼은 변치 않았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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