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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비나 Jan 10. 2023

치아바타를 굽는 남자

남편의 집밥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치아바타가 뭔지도 몰랐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나를 위해 치아바타를 구웠다. 출출한 주말 오전, 그냥 한번 해 본 말이었다. 밑져야 본전인 도박과도 같았다. 뭐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단 남편에게 던져 본다. 그럼 남편은 인터넷으로 조리 과정을 찾아본 후 냉장고 사정과 집 반경 10킬로미터 내외의 마트 사정, 조리도구 사정까지 고려한 후 할 수 있다, 못 한다를 판단한다. 치아바타는 할 수 있는 쪽이었다. 내심 놀랐다. 




아직 집 근처에서 맛있는 치아바타를 파는 빵집을 발견하지 못했다. 치아바타뿐만 아니라, 발효빵을 제대로 굽는 집이 없다. 나는 요리를 못하지만 아무거나 맛있게 잘 먹는 편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빵에 대해서는 까다롭다. 너무 달아도 싫고, 너무 퍽퍽해도 싫고, 너무 밋밋해도 싫다. 아마도 프랑스에 살면서 못된 버릇이 든 것 아닐까 싶다.


남편과 나는 각자 프랑스에서 유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파리에 머물던 시기가 1년 정도 겹쳤다. 함께하던 그 시절 우리는 바게트를 정말 많이 먹었다. 말 그대로 매일 먹었다. '프랑스에 왔으니 프랑스인처럼' 같은 낭만이 아니라 정말 바게트가 가장 쉽고 가장 싸며 가장 배 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서였다. 

바게트에 버터를 바르고 햄 한 장을 끼워 먹는 '쟝봉 붸르'는 한국으로 치면 김밥천국의 기본 김밥 같았다. 값싸고 든든하며 언제 어느 가게에서 먹어도 항상 기본은 하는 맛. 학교 매점에서, 이른 하굣길 기숙사 앞 빵집에서, 주말 장을 보고 오는 길에 들르는 동네 시장에서, 우리는 그렇게 많은 '쟝봉 붸르'를 먹었었다.


누군가에게 프랑스는 낭만이겠지만 그때 우리에게 낭만은 사치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유학을 결심한 남편은 독학으로 프랑스어 기초만 떼고 왔는데도 2년 만에 프랑스 기업 인턴이 되었을 정도로 치열한 유학 시절을 보냈다. 

나는 나대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문학 '따위'를 공부하러 왔다는 자괴감 때문에 부모님을 생각하면 괴로웠고 1년 안에 학위를 따고 돌아가 취업을 해야겠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오로지 기숙사와 학교와 도서관만 왕복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니 센 강이며 노트르담이며 노천카페며 모든 것이 내겐 그저 다큐 속 배경화면 같았다. 계절과 날씨가 시시각각 변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보내지만 나의 시간과 공간은 그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아끼고 아끼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바게트로 일주일을 버틸 때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 바게트만 먹으면 입천장이 다 까졌다. "어휴, 지겨워." 하고 투덜거리면서도 바게트가 물리진 않았다. 김치 생각이 간절해 양배추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었어도 바게트가 싫어지진 않았다. 어린 시절 허기짐을 잊기 위해 먹었던 음식은 훗날 쳐다도 보기 싫어진다던데 그런 일은 없었다. 

어쩌면 그 바게트가 너무 맛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입천장이 까질 정도로 딱딱한 바게트를 씹는 것이, 어쨌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한 문학도의 낭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곳저곳 빵집을 찾아다녔지만, 프랑스에서 먹었던 것 같은 바게트는 만날 수 없었다. 너무 말랑해 입천장이 까지지 않는 바게트는 바게트가 아니었다. 그럴 바엔 치아바타를 먹지, 싶었다. 이탈리아의 바게트라는 치아바타는 아무리 먹어도 입천장이 까질 일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제빵이라고는 핫케이크 가루를 사다가 만들어 본 것이 다였던 남편이 선뜻 치아바타를 구워 보겠다고 나선 것은. 반죽을 하고 발효가 되길 기다리는 동안 "이거 성공하면 바게트도 만들어 볼게."라며 웃었던 것은.


사실 남편이 구운 치아바타는 그저 그랬다. 발효가 잘못되었는지 구멍이 숑숑 뚫리지도 않았고, 부드럽게 결이 찢어지지도 않았으며, 쫄깃하지도 않았고 파운드케이크처럼 퍽퍽했다. 하지만 치아바타를 함께 먹으며 즐거웠다. 

어째서인지 막걸리 냄새를 풍긴다 싶었는데, 그 때문에 그 시절의 낭만에 취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픽사베이가 제공해 준 근사한 치아바타 사진과 우리 남편이 구운 어딘지 물고기 같은 치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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